안동지방의 농촌을 돌아다니다 보면 안방 뒷마루의 서까래위나 안방 위목벽 구석위의 선반에 놓여 있는 조그만 오지단지를 쉽게 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 집안의 평안과 부귀 일체를 관장한다는 성주신을 모셔 놓은 성주단지이다. 옛사람들은 가옥을 신축하여 입주를 했다건가 새로이 이사를 했을 경우에 성주를 모시는 봉안의 식을 행하여 성주신을 모시고, 철에 따라 성주신에 대해 고사를 지내왔었다. 성주신이란 쉽게 말해 최고의 가택신이라고 할수 있다. 즉, 옛사람들은 성주신이 그 가옥을 지키고, 가옥내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신이라고 믿어왔던 것이다.
이성주를 모시는 성주 신앙은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널리 분포되어,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의 생활한 부분을 차지해 왔는데, 특히 안동지방은 성주 신앙의 근본 즉, 본향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본래 성주신에 대해 치성굿을 드리거나 성주굿을 할 때, 치성을 드리는 사람이나 무당이 성주풀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이 성주풀이의 내용을 보면,[성주의 근본이 어드메냐?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 본일러라. 제비원에 솔씨받아.... ]하고 하는 본향을 밝히는 대목에서 안동의 제비원이 성주의 근본이라고 밝히고 있다. 성주풀이란 성주신앙에 관계되는 풀이형식의 노래라는 뜻으로 전국에 분포되어 지방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성주의 근본을 따지는 점에서는 모두가 안동의 제비원이라고 하여 안동지방이 민간신앙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나태내 주고 있다. 이것은 안동이 예전부터 우리 전통신앙 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성주신앙의 무속문화가 융성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며, 안동에서부터 전국으로 널리 퍼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제비원은 유형적인 안동의 상징일뿐만 아니라 우리민족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성주신앙은 성주신을 가내에 봉안하고 치성을 드리는 것인데, 성주신을 모시는 형태나 성주신체의 형태는 지방마다 각기 독특하게 형성되어 왔다고 한다. 안동지방에서 볼 수 있는 성주신체의 형태는 성주단지와 성주 맨 것이란 것이 있다. 성주단지라는 것은 조그만 오지단지에 쌀을 가득넣고 백지로 봉하고 무명실로 동여맨 것을 말하고, 성주 맨 것이라는 것은 한지를 접어 장방형이 되게 만들어 대청의기둥이나 안방쪽 벽에 붙이고 대를 깎아 만든 못을 네 귀퉁이에 꽂고 성주 종이를 무명실로 고정시킨 것을 말한다. 이러한 성주의 봉안은 어느 때나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집을 새로 지어 입주를 한다던가 새로이 이사를 가서 새로운 성주신이 필요한 경우에 가옥주의 나이에 7이라는 숫자가 드는 해에 한다고 한다. 즉 37, 47, 57 등 의 7의 수가 들어가는 해 10월에 날을 잡아 한다고 한다.
한편 안동 지방에서는 정월과 10월이 되면 날을 택하여 성주신에 대해 치성을 드린다. 또한 가을이 되어 추수를 하면 성주단지에 따로 깨끗하게 거둔 햇곡식을 가장먼저 바치고 흉년이 들거나 춘궁을 당해 아무리 굶주려도 성주단지의 곡식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성주는 한 가정의 안녕과 화복을 맡은 신이라고 믿어 재앙이 닥쳐 불행한 일이 생기게 되면 성주신에 대해 재앙을 물리쳐 달라고 정성껏 고사를 지내거나 또는 가정에 기쁜 일이 일어나도 정화수를 바치고 감사의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이외에 안동지방에서는 혼례를 치르고 난 신랑신부가 양 집안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기에 앞서 먼 저 집안에 모셔놓은 성주신에게 참배를 하는 집도 있었다고 한다.
이와같이 성주신앙은 우리 조 상들의 생활에서 기쁨과 즐거움, 고통과 불행을 함께 하며 그들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호흡을 같 이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초가집이 기와집으로 다시 아파트로 변천하는 세월의 흐름속에서 우리들의 생활 속에 이제는 차츰 사라져 가는 성주단지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네 할배, 할매의 장수와 온 가정의 행복을 지켜준다는 성주의 본향이 안동지방이라는 것은 안동을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해 볼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