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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별신굿

상세설명

수동의 별신굿놀이는 3년마다 인근의 5개 마을이 함께 국신당에서 마을제사를 올린 다음에 치루었던 행사였다. 국신당은 고려 공민왕 내외의 신상의 모신 당으로서 매년 정월 보름에 마을 공동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별신굿은 크게 마을제사와 농악진법놀이로 나누어진다. 제관은 정월 6, 7일경 각 마을에서 한명씩 동회의에서 선출하여 굿패들의 우두머리가 되며, 다음날 풍채가 좋아 놀이에 능하며, 부정이 없는 사람 가운데서 굿패들을 선출한다. 선출된 제관들은 그날부터 목욕 재계하며 3일전에 신당에 금줄을 치고, 마을안에서 도살을 금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각 마을마다 건립을 하여 경비를 모은다. 13일경에 풍산 시장에서 제물을 사고 놀이에 필요한 물품을 마련한다. 마을끼리 동진과 서진으로 나누고 각진마다 각각 좌우감사와 좌우병사를 뽑으며 각 마을마다 대장, 통인, 기수, 호장, 신령 등을 나누어 맡는다. 이들의 군장에 필요한 물품들은 새로 만들거나 관아에서 빌려 갖추었다고 한다. 정월 보름 밤에 각 마을의 제관은 군장한 굿패들을 거느리고 농악에 맞추어 국신당으로 행진한다.
마을에 따라 노랑, 하양, 파랑, 빨강색 등의 사령기와 동기를 앞세우고, 말을 탄 감사가 초록색 일산을 받치고 대장, 통인, 기수, 호장 등의 순서로 행진한다. 국신당 앞에 모두 모이면 좌우병사와 대장들이 주제자가 되어 별신제사를 올린다. 제물은 부정이 없는 집에서 부정이 없는 여자들이 장만한다. 이들 제물은 제사후 제관등 굿패들과 참가한 사람들이 음복을 한다. 음복이 끝나면 농악대의 진법놀이가 시작된다. 동진과 서진으로 나누고 200보 가량의 거리에서 정연하게 대진하여 진법놀이가 시작된다. 정면에선 대장의 지휘에 따라 대치되어 공격과 방어를 하고 개가죽으로 만든 가면을 쓴 호장이 뛰어다니며 사기를 북돋운다. 군사들의 이동은 농악대의 북소리에 의해 이루어진다. 대열이 정연하며, 함성이 우뢰와 같았다고 한다. 적진을 공격하기 전에 자기의 진영에서 정연하게 왔다 갔다 하면서 위세를 과시하기도 하고, 횡대로 함성을 지르며 공격하기도 한다. 포위작전이나 뒷걸음으로 싸우는 진법도 있다. 이렇게하여 16일 밤까지 논다고 한다.
이 별신굿놀이 때는 인근주민들이 그 위풍당당한 행렬과 굿패의 진법놀이를 구경하기 위해 많이 몰렸다고 한다. 또 이 놀이를 보면 액운을 면한다는 속말과 함께 국신의 영험을 얻기 위해 빌러오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전하는 말에 의하면,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을 토벌하러 가는 모의 전쟁놀이라고도 하는 이 놀이는 약 10여년전 정미년 대제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