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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신앙

상세설명

민간에서 부녀자를 중심으로 전승되어 오는 가신신앙은 과학이나 당위성의 차원을 넘어선 절대자에게 귀착하여 가내 안정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일종의 종교현상이다. 성주(집안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최고신), 조왕(육아점지 기능과 재산신), 삼신할매(육아를 관장), 용단지(풍작, 다산)등 많은 신례들을 가택 곳곳에 봉안해 놓고 일정한 시기에 제를 올리던 가신신앙이근래에 와서는 성주, 조왕, 삼신할매를 비롯한 특정 신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쇠퇴일로에 있어 그 원형을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고 기능 또한 여러 가지가 복합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사실은 안동군 북후면 옹천동 주민의 제보에서도 나타나듯이 6.25사변 때 가옥과 함께 잿더미로 변했거나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신식주택이 들어서면서 귀찮게 여긴 젊은 세대들이 새로운 성주 설치를 기피한 점과 가신신앙을 미신시하여 타파의 대상으로 여긴데서 연유한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외면되고 있는 이들 가신신앙도 지방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민간인의 사고에 깊이 밀착되어 여전히 전해져오고 있다는 점만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신례를 모셔놓고 일정한 시기에 제를 올리는 것과 같은 형식성보다는 신체가 없는 건궁형태로 위급한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일시적으로 치성을 드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하는 것은 신이영묘한 효험보다는 심리적 안정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리라 믿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여러 가신들 중에서 가정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성주는 최고 가택신으로 일컬어질고 있으며 가장 보편화되어 있어 안동지방을 중심으로한 북부지방 일대의 성주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성주대감, 성주단지로도 불리워지고 있는 성주는 이사를 했거나 집을 세로 지었을 때, 그리고 대주의 나이가 성주운이 좋다는 37세, 47세, 57세일 때 설치하는데 그 형태는 크게 단지형태와 한지형태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집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대청마루 한 구석에 조그만 단지를 마련한 뒤 해마다 햇곡식을 갈아 넣고 한지나 헝겊으로 봉해놓은 것이며, 한지형태란 곡식, 돈 따위를 넣은 한지를 접어 대청에 실로 매달아 놓거나 여러 가지 형태로 오린 한지를 대청에 붙여 놓은 것이다.
성주 설치는 그 집안의 어른이 손수하는 경우가 있고, 보살을 불러다가 재복과 행운을 축원하는 성주를 하여 설치하기도 한다. 이렇게 설치된 성주는 그날부터 재두를 대신하는 중요한 기능을 가지는데 만일 이사를 갈 경우, 성주단지는 원형 그대로 땅 속에 묻고 접은 한지는 살아있는 나무가지에 걸어놓고 가며 대주사망시는 [성주가 나갔다]라 하여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대소명절이나 성주가 봉인된 날(성주생일)은 특별히 기억하여 해마다 제를 올리고 햇곡식을 거둬들이면 그것으로 장만한 음식을 성주께 바친다. 이때 제법은 유가식 제례법에 준하고 제관은 부녀자가 중심이 된 가족, 혹은 부녀자 혼자만인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이 후자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취재팀이 찾아간 봉화군 봉화읍 석평리 김분홍(여.72) 할머니 댁에는 먼지가 묻고 누렇게 바랜 한지형태의 성주가 대청마루위에 걸려 있었다. 할머니에 의하면 10년 이상 그 자리를 지키며 농사의 풍작과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었다고 한다. 이 가정의 성주 생일은 삼월 열이레이며 할머니께서는 약 10년동안, 이날을 잊지 않고 제를 열렸고 정월대보름, 추석, 동지때가 되면 뫼,국,과일,숙주등을 차려놓고 할아버지와 함께 제를 올렸다고 한다. 집안에 근심이 있을 때에도 정화수를 떠놓고 빌어왔다는 김할머니께 어떤 식으로 제사를 지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절은 영감이 하재... 나는 뒤에서 성주님, 그저 식구들 아무 탈 없이 보살펴 주시고 농사 풍년들게 해주이소...]전지전능하신 성주 앞에서 할머니는 제가 끝날 때까지 가정의 무사를 기원하시고 제가 끝나면 가족들의 생시가 적힌 소지를 올리는데 이때에도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위해 할머니께서 기도를 하신다.
그리고 제가 끝난 뒤 음식은 자기 가족의 복을 위해 절대 남을 줘서는 안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시냐고 묻자 네명의 손주를 가리키시며 [저놈들이 있잖아]라는 대답에 취재팀은 한바탕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이상에서 볼 때 가신신앙에는 여타의 민간신앙에서 찾아볼수 없는 특이한 점이 몇가지 나타난다.첫째로는 신체를 가택내에 봉안하며 그것을 모시는 방법에 있어서도 가족중심적이고 상당히 배타적이라는 점이다.둘째, 일부에서는 대주의 직접적인 참여도 있으나 언제든지 부녀자가 중심이된다는 점.셋째, 가택 최고신인 성주를 대주와 동일시 여긴 것으로 미루어 보아 부권중심의 상징적인 질서체계가 투영되어 있다는 점.넷째, 유일신이 아닌 다신신앙으로 민간에 구전된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제례법은 유가식 제의에 따르지만 형식성으로보다는 정성지상주의에 가깝다는 점이다.이같은 특성과 함께 가신은, 질병에 걸려도 의술이 보편화되지 모해 치료가 거의 불가능했던 과거, 농사를 주업으로 하면서도 하늘만 우러러야 했던 농촌사회에서 우리 조상들의 간절하고 응어리진 소원과 한을 풀어주는데 그 무엇보다도 강한 힘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에 와서도 과학적 사고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정신적 사슬을 대청마루에 걸린 한조각 한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교단도 교리도 없는 종교가 주는 끝없는 묘미와 정신적 위안을 얻기 위함인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