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북후면 천등산 아래 도계촌(道溪村)은 의정공(議政公) 권사빈(權士彬)이 세상을 피해 산 곳이며, 야옹공(野翁公) 4형제분이 탄생한 땅이다. 이곳은 원래 높고 험한 산이나 기절한 수석은 없으나 산세가 밝으면서도 순하며 토질이 비옥하며 아름다운 기운이 모인 곳이다.
중년에 의흥공과 제촌공은 예천의 저곡(楮谷)으로 이거했다. 야옹공은 아들 일곱 분을 두었는데 여섯째 아들인 심행(審行)은 옛터에 그대로 살면서 대대로 유학의 규범을 지켰다. 이어 백공(佰公) 역시 저곡으로 이거하여 자손이 대대로 번창하였다.
중공(仲公)인 충재 선생은 삼척부사 재임 중 난정을 만나 벼슬을 버리고 환향 도중 봉화 유곡(酉谷)의 풍광을 아껴 장수의 터전을 삼았다. 기미년(1979) 봄에 동파(同派)의 후손들이 모여서 옛 터에 비석이라도 세워 기념하고자 하였으나, 정자를 세워 선덕(先德)을 기리는 장소로 삼아야 한다고 결의하고 일년이 못되어 정자가 완성되었다. ‘오선정’으로 이름 지은 것은 이곳에서 다섯 분의 선조께서 보였다는 데서 따온 것이다. 「오선정기문」은 17세손 권숙과 1979년에 순천인 김철희가 썼다.
권씨문중
목조와가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