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남댁

주소
도산면 의촌길 76-5(의촌리 108)
상세설명

이 건물은 고종연간의 대원군 집정시 지어진 주택으로 서울의 창덕궁을 모방하여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집안의 모든 아궁이에서 나오는 연기를 본채 후면에 전석(塼石)으로 쌓아 만든 하나의 굴뚝으로 빠져나가게 한 독특한 구조이다.
- 규모
. 원래 99칸이었으나 6.25동란으로50칸 정도만 남아있다

  • 시대구분
    . 조선시대

  • 형태/방법/업적
    ㅁ자형 구조를 이룬 본채 좌측에 역시 ㅁ자형의 사랑채가 이어지고, 본채와 사랑채 사이에 행랑(行廊)채가 들어서 있다. 원래는 좌측으로 안사랑채가 달려 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문화재 지정여부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7호(1973년 8월 31일)

  • 관련 인물 및 유적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던 고종 연간에 좌산 이만윤이 지었다고 한다. 그는 서울의 창덕궁과 같은 모양의 집을 짓기 위하여 자신이 직접 공사를 감독하였다고 한다. 처음 지었을 때는 99칸 집이었으나, 6·25전쟁 때 일부가 파괴되고 지금은 50칸 정도만 남아 있다.

  • 참고 자료
    . 안동문화원,1994,안동군지정문화재편람,영남사(안동),p.102-103

역사적 유래

이 집에서는 류기목(柳祈睦)의 맏아들 석호(石湖) 류도성(柳道性)이 태어났다.
석호는 그 뒤 백부인 류희목(柳希睦)에게로 입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