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산

주소
와룡면 주계리
상세설명
  •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주계리
  • 높이 : 해발460.8m

  • 특징
    안동와룡산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거석문화(巨石文化)가 발달하여 구전자원(口傳資源)이 관광자원화된 곳으로서 산의 형세가 천하를 호령하고 돌아온 용이 편히 누운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음이온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소나무 침엽수림으로 형성되어 있어 등산객들은 음이온의 효능을 몸소 체험하면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산 곳곳에 각종 명소들이 산재해 있고 봄과 가을 와룡산 해돋이는 구름과 안개에 의한 구름 위 봉우리에서 일출은 신선의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봄철 백담길 일대는 각종 야생화가 온 지천을 이루고, 초여름 아카시아 꽃이 필 때면 계곡 전체가 아카시아 꽃향기가 넘치는 나무숲을 걷는 산행은 등산객들의 마음을 싱그럽게 할 것이며, 겨울철 함박눈이 내리면 등산로 주변 노송에 눈꽃이 피어난 설경의 아름다움은 등산객들의 마음을 자연의 위대함에 경건하고 숙연해지도록 감동시키고, 와룡산에서의 저녁노을 해몰이는 등산 귀가길에 장엄하고 엄숙함으로 또 한 번의 감동과 자연의 아름다운 위용을 자랑한다.
    안동와룡산은 전국에서 가장 이상적인 초.중등학교 및 가족단위 산행지로서 으뜸가는 자연환경이 현존하고 있는 곳이다.

  • 와룡산의 유래
    낙동강지역에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역사시대 청동기 및 철기문화의 꽃을 피운 지역으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다양한 거석문화가 발달 보존된 와룡산 일대는 빼어난 산세와 물과 토질이 좋으며, 학행높은 선비들이 많이 태어난 곳이다. 와룡산은 나라와 지방고을에서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마다 관리들과 고을민들이 제관이 되어 천제를 올린 곳이고, 안동부 동쪽의 진산(鎭山)으로서 민족의 소원을 발원하던 사직단과 기우단이 현존하고 있으며, 산의 형세가 천하를 평정하고 돌아온 용이 편히 누운 자세를 취하고 있어 조선조 중기 문신학자 백담 구봉령 선생에 의하여 처음으로 용산(龍山)이라 칭하고 까투리봉 일대를 와룡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와룡산에 용트림하는 황룡과 안동호에서 용트림하는 흑룡이 물을 만나 천하를 평정하니 안동의 전통 정신문화는 더욱 발전 계승될 것으로 보인다.

등산코스

. 등산코스
용두주차장 → 금이온약수 → 신선대(범의굴) → 용두봉(일출봉) → 미륵바위 → 곰 남근 바위 → 옥좌바위 → 개구리바위 → 부처바위,두꺼비바위 → 와룡산기우단,거북바위 → 직녀암 → 견우암 → 까투리바위 → 선비바위 → 산제당 → 용천약수탕 → 사자바위 → 칠성바위 → 평풍바위 → 당집골등(동신당터) → 용두주차장(음이온 제험, 산행 3시간 소요)

. 일출코스
용두주차장 → 부처바위,두꺼비바위 → 개구리바위 → 옥좌바위 → 곰남근 바위 → 미륵바위 →
용두봉(일출봉)정상 (일출)

. 야간 산행코스
용두주차장 → 당집골등 → 선비길 → 선비바위 → 까투리바위 → 견우암 → 직녀암 → 와룡산기우단 → 부처바위,두꺼비바위 → 개구리바위 → 옥좌바위 → 곰 남근 바위 → 미륵바위 → 용두봉(일출봉)정상(야영 및 안동의 야경감상, 별자리 관찰, 안동호 새벽 물안개와 와룡산 일출)

와룡산 일출

와룡산 일출은 특히 가을에는 안동호 물안개와 운해로 인하여 일출봉 8부 능선까지 천지가 잔잔한 수평으로 자욱한 안개와 운해위에 드러난 봉우리에서 일출시 기분은 마치 신선이된 기분을 자아내게 할뿐더러 강원도의 정동진 일출과 견줄 만한 전경을 볼 수 잇는 장관을 연출한다.

와룡산 일출은 안동에서 해돋이 전경이 경이롭고 기암 괴석들이 등산로를 따라 산재해 있어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볼 수 있다. 미륵바위를 지나 용두봉에 이르면 약 150평정도의 넓은 하늘공원이 있고 정상에서 바라본 안동호는 구비구비 사방으로 펼쳐져 있어 등산객들의 마음이 시원하면서 상쾌해지고, 소나무 숲에 몸을 맡기면 일상의 피로가 한꺼번에 쓸려 나간다. 와룡산은 氣를 받는 영험이 있는 산이기 때문에 매년 정월 초 하루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해맞이 행사를 하기 위하여 찾고 있는데 최근에는 어린 아이들과 함께 등산하는 가족들이 많으며, 남녀 노소가 등산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각광받고 있어 각처 산악회에서의 등산객들이 날로 증가 추세에 있는 곳이다.

와룡산의 기암괴석1

두꺼비 바위 선돌
[위치] 용두봉 정상 부근 능선에 위치
[유래]
용두봉 능선에 위치한 바위의 모습이 한 쌍의 두꺼비가 사랑하는 모습을 하고 있어 두꺼비 바위라 부르는데 사람들은 이곳에 자식의 번창과 가정의 안녕을 축원하면서 소원성취를 빌고, 두꺼비바위는 세워진 위치나 형태로 보아 일출 및 태양숭배와 관련된 것으로서 바위 앞에 제단이 준비되어 있고 두꺼비바위 선돌은 부락민의 신앙처로 보호를 받아왔다.

거북 바위
[위치] 일출봉 정상 부근에 위치
[유래] 예로부터 거북은 집안이나 고을에 액운을 막아주는 영물(靈物) 또는 신물(神物)로 간주되어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동시에 인간의 미래를 알려주는 예시적 동물로 인정받아 왔다. 이 바위 모양이 거북 모양이고, 머리는 마을를 향하고 있으며, 근래에 일부 사람들에 의해서 목과 머리가 훼손되었다. 주민들은 거북바위가 마을에 풍요와 안녕을 빌어준다고 믿고 있다.

까투리 바위 선돌
[위치] 까투리봉 정상 부근에 위치
[유래] 이곳에 서식하는 보라매들이 까투리를 사냥하게 되면 반드시 이 바위로 가져 간다고 하여 까투리바위라고 부른다.
이 바위 상단 측면부분에 구멍이 있는데 1년 12개월 계속 물이 차 있는 것이 신비하며, 그것은 아득한 옛날 고을에 예쁜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처녀가 뒷산으로 나물을 캐러 올라갔다가 까투리바위에서 발을 헛디뎌 그만 떨어져 꽃다운 나이에 그곳에서 죽었다고 한다. 그 때부터 그의 넋을 달래기 위하여 정화수가 만들어 졌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부처 바위
[위치] 용두봉 능선 두꺼비바위 옆에 위치
[전설]
마주보는 학가산에 있는 부처바위께서 보살바위에게 와룡산의 부처바위를 모셔 오라는 명을 주어 명을 받은 학가산 보살바위는 와룡산의 부처바위를 모시로 왔으나 부처바위는 이곳 신령님을 모셔야하는 막중한 사명감과 일대 많은 중생들을 보살펴야 하기 때문에 따라가기를 거절했다. 보살바위는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함께 가기를 설득하다가 날이 밝아 그만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 부처바위 앞에 바위가 됐다고 하는 전설이 유래되는 바위다.

기자(基子) 바위 선돌
[위치] 구선대 병풍바위를 지나 한 굽이 더 가면 길가에 위치
[유래] 마을 어귀에 마치 갓을 쓰고 있는 형상의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아들을 점지해 준다는 바위다.
바위의 전면이 거의 수직을 이루다가 중간에서 턱이 지면서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 있는데 돌을 던져서 이곳에 돌이 얹히면 아들을 낳는다는 말이 전한다. 왼손으로 던지면 더 좋다고 하는데 바위 부근에는 기자를 바라는 사람들이 던져놓은 작은 돌이 수북히 쌓여 있으며, 이 기자바위 선돌은 부락민들의 신앙대상으로 보호받고 있다.

구선대
[위치] 게실마을 아래 기자바위 옆에 위치
[전설] 전설에 따르면 아홉 선녀들이 구선대 맑은 계루에서 목욕을 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고하여 구선대라 불렀는데 지금도 가을이면 만산홍엽(滿山紅葉)의 풍광이 매우 아름답고 구선대는 마치 병풍을 펼쳐 놓은 현상의 병풍바위를 중심으로 그 좌우에 크고 작은 괴암들이 모여 있으며, 그 앞에는 맑은 계루가 흐르는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이곳은 백담 구봉령, 유일재 김언기, 회곡 권춘란, 송암 권호문, 지산 김필원 등 아홉분의 학행 높은 선비들이 산사(山寺)에서 모임을 맺고, 이곳에서 학문을 강론하였다고 한다. 최근 안동호 강변 순환도로 공사로 인하여 훼손되었다.

신선대 범의 굴
[위치] 용두봉 남쪽 아래 7부 능선 기슭에 위치
[전설] 암석이 깍은 듯한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는 바위산을 신선대라 부르며, 신령님들이 범의 호위를 받으면서 잔치를 벌였다는 전설이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 소원성취를 위해서 불공을 드리고, 무녀들은 산신기도를 올리는 장소로서 깊은 동굴 안에는 용신암(龍神岩)이 자리잡고 있어 관광객들으 신비하고 흥미롭게 보며, 옛날 용두고을 민초들이 신선대 범의 굴에서 불을 피우면 새터 앞산 황룡도강지 전면 마루에 연기가 나온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와룡산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아주 긴 동굴이 형성되어 있다고 믿어온터라 호기심에 이 땅에 살던 선조들이 불을 피운 흔적이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 있다.
1870년경 신선대 아래 구 기와집 농가 한 가구가 거주하고 있었으나 신선대 범의 굴에서 서식한 호랑이들의 잦은 출현으로 결국 마을로 이주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와룡산의 기암괴석 2

금광굴
[위치] 용두봉 정상 9부 능선에 위치
[근거] 용두봉 능선에 있는 굴을 금광굴이라 하며, 굴의 넓이는 3m, 길이는 50m이고, 50년대의 금을 채취하던 장소로서 금맥과 각종 석영이 분포된 지질구조며, 안동에서는 유일하게 각종 박쥐들이 집단적으로 서식하고 있어 박쥐생태와 지질연구에 적합한 장소이다. 겨울에는 굴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오고, 여름에는 시원한 찬 바람이 나와 등산객들의 피로와 더위를 한꺼번에 말끔히 씻어준다.

탕건바위
[위치] 주계정미소 뒷산 능선에 위치
[유래] 옛날 양반들이 갓 안에 쓰는 탕건 모양으로 생겼다고 탕건바위라 불리고 있다

개구리 바위
[위치] 용두봉 북쪽능선 등산로에 위치
[유래] 바위의 형태가 긴 동면에서 막 깨어나 대지위로 얼굴을 내미는 모습과 바위의 겉무늬 색깔이 흡사 청개구리와 같고 이 바위가 영험이 있어 원시사회 당시 주변고을 주민들은 가뭄이 극심하게 닥치면 와룡산에서 물굿과 기우단에서 무제를 올리고, 3개봉에 불을 피워서 연기를 하늘로 올리면, 청개구리의 청원과 주민들의 지성이 감동이 되어 하늘에서 많은 비를 뿌려주어 농민들은 무사히 농사를 지을 수 있어 기근을 면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와룡산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중기까지 물이 많은 산 수다산(水多山)이라고 불려졌다.

옥좌바위
[위치] 용두봉 북쪽능선 등산로에 위치
[유래] 바위의 형태가 흡사 옥황상제가 앉는 자리와 같고 원시사회 당시 곰이 용두봉 능선에 자리를 잡고 옥황상제의 알현을 위하여 용상을 만들어 놓고 옥황상제는 이 용상에 앉아서 곰의 소원을 듣고 웅녀로 만들어 주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게하는 바위로서 저마다의 소원을 간직한 많은 등산객들이 이 옥좌바위에 앉아 소원을 빌며 와룡산 등산기념 사진을 찍기도 한다

미륵바위
[위치] 용두봉 정상 등산로에 위치
[유래] 민초들의 삶과 애환을 달래주었던 용두봉 미륵바위 형태가 흡사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고, 불자님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가정에 항상 좋은 일과 와룡산에서 좋은 기운을 받고 나쁜 기운과 액운을 막기 위하여 등산객들은 미륵바위에 무언의 기도를 하고 산행을 즐긴다. 나름대로의 소원을 이루고자 미륵바위에 극진히 지성을 드리는 것은 조선 민초들의 자화상이다.

곰 남근바위
[위치] 용두봉 북쪽능선 등산로에 위치
[유래] 등산객들이 지나가는 등산로 앞에서 곰이 자기의 커다란 거시기를 등산객들에게 자랑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곰의 남근을 만지면 아들을 생산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어 쓰다듬어 주는 등산객들도 있다. 이 바위는 원시사회 당시 자식이 없거나 아들 낳기를 기원하는 기자신앙의 형태로서 주민들로부터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점령숭배에 신앙처로 신성시하고 보호받아 왔다.

선비바위
[위치] 까투리바위 150m 지나 현사사 약수터 가는 능선 고개에 위치
[유래] 옛날 학행 높으신 선비들이 와룡산 고개넘어 유서깊은 옛 현사사(玄飼寺)에 모여 학문을 논하고자 이 지름길을 이용하였는데 와룡산 고개를 올라와 이 기암괴석에 앉자 피로를 풀면서 시한 수를 읊었다는 곳으로 유명하며, 철따라 피어나는 진달래, 철쭉 야생화와 겨울철의 설경이 일품이다. 또한 선비바위에서 볼 수 있는 안동호 가을철 새벽 운해와 물안개가 장관을 이루고, 멀리 국학원과 청량산 및 일월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칠성바위
[위치] 와룡산 사자바위 앞에 위치
[유래] 까투리봉 올라가는 입구에 커다란 바위들이 신비하게도 겹겹이 포개져 올라 앉아 있는데, 칠성바위 유래는 옛날 전래동화가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바위 아래 오막살이 초가집에 순박한 부부가 살았다. 매일 근심걱정은 아들이 없는 것이었다. 하루는 우연히 괴나리 봇짐을 한 스님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이에 감동한 스님은 후사를 이을 방법을 알려 주었고, 부부는 스님이 준 처방을 가지고 칠성바위 앞에 정화수를 떠놓고 촛불을 켜고 백일기도를 하며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지성을 들이자 얼마 후 아들을 얻었다고 한다. 우리의 전통사상에 있어서 삼신이라는 것은 만물의 시작, 출생이란 의미를 갖고 있으며 칠성이라는 것은 수명장수, 생명에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삼신이나 칠성에서 점지해 주어야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조선의 민초들은 믿어 왔다.

와룡산의 기암괴석3

직녀암
[위치] 까투리봉 올라가는 능선 오작로에 위치
[유래] 바위의 형태가 흡사 세분의 천상선녀(天上仙女)와 그의 하녀들을 연상케하며, 직녀가 견우와 사랑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산천을 노닐다가 그만 새벽 닭이 울어 하늘나라로 가지 못하고 와룡산에서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안동호의 아름다운 물안개와 운해는 직녀가 짜놓은 비단이리라고 구전되고 있다.

견우암
[위치] 까투리봉 올라가는 직녀암 옆에 위치
[유래] 견우암 바위에는 신비하게도 왕가에서 준 모자와 같은 문양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직녀와 결혼하고 하늘나라 옥황상제로부터 받은 왕관이라고 구전된다. 견우암은 직녀의 비단짜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듯하며, 일출객들은 안동호의 물안개와 새벽 일출이 견우와 직녀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사랑의 무지개라고들 하고 있다.

주계리 고인돌
[위치] 주계리 구선대 일대
[유래] 거석숭배는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에 걸쳐 성행한 문화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다양한 거석문화가 발달되고 보존된 와룡산 일대의 세워진 선돌들과 고인돌은 천연석에다 어떤 인위적인 가공을 하였으며, 특히 주계리 고인돌은 남방식 고인돌이면서 자연석에다 인공미가 가미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형태의 최고 예술적 미가 덧보이고 있다.
이곳 거석문화 선조인들은 돌 다루는 기술이 극치에 이른 것으로 보이며, 이 거석문화의 작품들은 조상들의 삶과 이상에 시대상과 염원을 담아 농축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고, 그것을 상기시키는 산물로 보인다.

위치설명

안동시내에서 도산서원 방면 35번 따라가다가 와룡삼거리에서 예안방면으로 우회전 (주계리(와룡산입구)→용산주차장)

교통편

. 교보생명 앞(시외버스터미널 옆)에서 앞에서 59번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주계정미소(용두골)에서 하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