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고종때 첨의중서사를 지낸 조지수를 시조로 하며, 그 손자 양기가 충렬왕때 김방경 휘하에 서 부원수로 일본 정벌에 공을 세웠고, 충숙왕때 겨우 약관으로 여진에 붙잡혀 간 관, 민 160여호 를 쇄환하고, 공민왕때 유인우를 도와 몽고로부터 쌍성총관부를 회복, 홍건적 난리에 남행하는 왕 을 호종,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1등공신 용성군에 봉해진 조돈이며, 역시 쌍성총관부 회목 에 공헌하고 동북면 원수, 파밀직, 강릉도원수 상원수 등을 지내며 여러차례에 걸쳐 남북 여러군 데서 왜구 토벌에 눈부신 공을 세우고, 문하찬성사 등의 요직을 역임한 그 아들 인벽 부자를 전 후하여 많은 인물을 낸 한양 조씨의 한 갈래가 영남에 옮겨 살게 되기는 중종때 청하현감을 지낸 조종이 기묘사화를 피하여 영천(지금 영주)에 전거함에서 비롯되는데, 옛 안동부의 속현인 감천에 정착하기는 인조때 진사 조관으로 부터다.
진사 조관이 남한산성의 치욕이 있은 뒤 세상에 나설 뜻이 없어 감천 산골에 자취를 숨기매, 인 하여 그 후손이 거기에 뿌리를 내려 세거해 오는데, 정착 2백여년에 문행, 과환이 대대로 잇달아, 문과 6장에 진사 15장, 문집 12질을 내어, 영남에 두루 알려진 가벌로 지체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