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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조씨

상세설명

자원 설명

세조때 안동 운안동에 정착한 함안 조씨는 이 곳에 정착할 당시는 상당한 지체의 가문이었다. 이제, 그 가계의 뿌리를 더듬어 보면, 안동에 처음 정착한 조욱은 세종말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단종원년에 문과에 올라, 정자벼슬에 있다가 단종임금이 왕위를 빼앗기자, 비분강개하여 분연히 벼슬을 던지고, 그 종형 조여와 함께 고향 함안에 물러가 울회를 달래었으며, 단종임금이 승하하매 그 종형과 함께 3년복을 입었다. 욱은 뒤에 진주, 경주교수를 거쳐 안동교수를 지내고, 저작에 옮겼다가, 성종이 즉위하고 통정대부에 올라 병조참시에 임명되었으나, 곧 벼슬을 버리고 은퇴, 안동 운안동에 터전을 열어 정착했다.
그의 아버지 영은 태종 14년 갑오에 문과에 급제하고, 의령현감으로, 교학을 일으키고 풍속을 바 르게 함에 힘써, 다스리기 몇 해에 크게 치적이 있었으며, 사헌부감찰에 승진되어, 떠나올 때는 거문고와 책 몇권만을 지녔을 뿐으로, 마치 가난한 선비의 나들이처럼 행장이 쓸쓸했다고 한다.
절의의 횃불을 드높여 길이 겨례의 양심을 밝힌 어계 조여는 생육신의 한 분으로, 바로 영의 조 카였으니, 이상으로도 당시 그 가문의 지체와 가풍은 짐작할만 하다. 고려 건국공신 조정을 시조로 하는 함안조씨는 잇달아 고려에 벼슬을 지냈으며, 고려 후기에 이 르러 욱의 6대조 열이 정당문학, 열의 아들 희가 삼사좌윤, 희의 아들 지흥이 계림부참군, 지흥의 아들 천계가 판도판서, 그 아들 열이 공조전서로, 고려가 무너질 무렵, 함주(함안) 원북동에 숨어 거문고와 그림으로 물외에 자적했으니, 이가 곧 욱의 조부다. 어계의 후손은 본향인 함안을 중심으로 창원, 함양, 울산등지에 분포되어, 여러 인물이 배출된데 대하여, 이 곳 운안동에 자리잡은 욱의 후손은 호수는 비교적 성한 편이나, 과환이 적은 편이어서 ′함안조씨대동보′에 의하면, 욱의 아들 무동이 통덕랑, 증손 무응이 참봉, 5대손 병도가 예빈시주 부, 계도가 훈련원봉사, 참봉 무응의 아들 혁이 증직 군자감정, 효도가 증 사헌부장령, 세도가 학 생, 휴도, 천도가 수통정이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자못 번성하여, 지역사회의 중진으로 활약하는 인물이 여럿이며,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등 신진 인재들이 이어 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