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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하씨

상세설명

자원 설명

숙부 수양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임금의 복위를 위하여, 일신 아니 일가의 고귀한 생명을 현정 의 제단에 바친 영원한 절의의 상징 사육신. 일월과 더불어 그 빛을 가지런히 하고, 백두성악에 높이를 견줄 그 거룩한 순의. 이 장절한 성인이 발하는 빛과 향기는 이씨 왕조 5백년 역사에 얼 룩진 온갖 어둡고 추악한 구석을 모두 덮어 가리우고도 남을만큼 우리 역사에 영원히 우뚝하여 찬연한 광망을 뿜을 정의의 금자탑이며, 우리 자손만대의 가슴마다에 소중히 간직될 양심의 거울 이 될 것이다.
한갖 세리에만 눈이 어두워, 피에 굶주린 이리떼처럼 날뛰는 간악한 무리를 향하여 분연히 파사 의 육탄을 던진 추상열일의 충의. 이는 곧 하늘 땅을 떠받는 기둥이요, 세상을 지탱하는 힘의 바 탕이요, 온갖 민문을 살리는 생명의 근원이라 할 것이다. 두간이 상궤를 벗어나 해괴스런 작태를 예사로 여기는 인간의 발악으로 하여, 하마 망가져버릴것만 같은 세상이 그래도 용케 벋어갈 수 있게하는 힘의 바탕이 바로 이러한 대의의 씨앗인 것이다.
그 여섯 의인의 한분인 하단계 선생의 후예가 마을을 이루어 선생의 사당을 받들고 세거해오는 여기, 그 종가에는 선생이 끼친 보배로운 유적들이 소중히 간직되어, 길이 후인들에게 숭모의 정 을 새롭게 한다. 본래 진주의 토족으로, 하단계(하위지)의 7대조 성에서 조부 지백까지는 대개 낮은 무관직으로 이어오다가, 단계의 아버지 담이 태종 2년 문과에 올라, 사헌부지평을 지냄으로하여 사족으로 발전했다.
담이 선산 유씨에 장가를 듦으로 해서, 그 처가 고장인 선산에 옮겨 살게 되고, 그 아들 강지, 위지가 세종조에 차례로 과거에 올라, 가세가 자못 번성하게 되던 즈음, 위지가 성삼문등과 함께 단종 복위운동에 실패함으로 멸문의 화를 당하게 되매, 소지의 어린 아들 원이 봉화 외가에 숨어 자라, 안동 송파 처가 마을인 송파에 정착, 위지의 제사를 받들었으며, 그 자손이 위지의 봉사손 으로 세거해 온다.
위지는 처형되기에 앞서, 어린조카 원으로 후사를 정하도록 유권을 남겼다. (그 런데 소지는 미리부터, 그 처가 고장인 봉화 땅에서 살고 있었던 듯도 한데, 그것은 그 장인 금해 로부터 봉화 물야에 있는 논 1석지기, 종 2명, 놋동이 등을 분급받은 사실 등을 미루어 그러하다.
그렇다면, 그 아들 원은 사육신 사건 뒤에 봉화에 온 것이 아니고, 봉화에서 생장했을 것이며, 소 지는 이미 육신 사건 이전에 사망했기에 연좌되지 않았으며, 그의 노비가 형 위지의 호적에 함께 올라있었기에 위지의 재산으로 몰수되었던 것은 그 아들 원이 세조7년 노비추쇄색에 진정하여, 그 아버지 소지몫의 노비 4명을 환급받았고, 성종 20년에 작성된 원의 소지에, ′봉화현에 있는 정 병학생 하원′이라 적었으니, 원이 그때는 봉화에 살고 있었음을 알수 있으며, 세조때에는 죄인의 계열로 봉화, 선산, 안동등지를 전전하며 숨어 살았으나, 성종 무렵에는 차츰 해금되어, 원이 봉화 에서 정병이란 직책을 가졌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