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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정씨

상세설명

자원 설명

′영가지′에 의하면 청주 정씨가 안동에 살기는 공민왕때 첨의평리를 지내고 서원군에 봉해진 정 오와 우간의대부를 지낸 그 아우 보형제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목은 이색이 지은 ′서원정씨가전′에 의하면, 고려 중기에 중랑장을 지낸 극경을 시조로하는 청주 정씨는 시조의 아들 효문이 별장을 지내고, 그 손자 의가 고려 고종 4년, 서경에서 최수광의 반란 을 평정한 공으로 대장군이 되었으며, 이는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에 천도한 이듬해인 고종 20년 또 반란을 일으킨 낭장 필현조를 설득하고자 서경에 갔다가 순국했고, 그 아들 환이 감찰어사, 그 아들 해가 문장 글씨에 뛰어나, 원종때 진사, 문과에 올라 도첨의찬성사를 역임, 다난한 국사에 크게 이바지 했으며, 그 아들 책이 궁궐도감으로, 참소를 입어 원나라에 억류되어 있는 왕(충숙 왕)을 도운 공으로 청하군에 봉해지고 판도판서를 역임했는데, 이는 김방경의 아들인 상락군 김순 의 사위로, 안동에 입향한 설헌, 설곡은 바로 이의 아들이다. 설헌은 문과급제로 공민왕의 사부, 첨의평리를 지내고, 그 아우 설곡은 진사, 문과로 충혜왕때 우간의대부를 지냈다.
′영가지′ 방리편 회곡촌조에 ′마을 어귀에 남향으로 된 큰 밭이 있으니, 예로부터 전하기를 충렬 왕이 여기서 살았는데, 설헌과 설곡형제도 외가로하여, 와서 살다′라고 했음을 보아, 설헌 형제가 이곳 회곡에 입향하게 되기는 그 외가의 반연이었음을 알수 있다. 또 ′영가지′ 인물편에는 ′소부정윤을 지낸 퇴은 침이 부동 지내동(지금 와룡면)에 와서 살다′라고 했는데, 그 뒤 거의 떠났으나, 지금도 그 후손이 수십호쯤 살고 있다.
퇴은의 아들 선진은 양가대사로, 조계종연복사 주지가 되고, 셋째 운은 문과급제로 판서교에 있 었다. 퇴은의 손자 약이 태종때 형조좌랑을 지내고, 그 손자 인로가 용양위사직을 지냈으며, 인로 의 손자 두가 말바우(지금 와룡면)에 옮겨 정착, 이래 4백여년을 세거해 오는데, 두의 아들 사성 이 퇴계 문인으로 진사에 오르고 현감을 지냈으며, 학행으로 일컬었다.
그 아우 사신은 문과 중시 에 급제, 임진왜란에 공을 세우고, 군수를 거쳐 판결사를 지냈으며, 북경기행문 ′조천록′을 남겼다. 사성의 아들 전이 진사로 의금부도사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그 7대손 내성이 문과급제 로, 사간원정언으로 은퇴, 벼슬을 사양하고, 향리에서 후진을 길렀으며, 사신의 아들 식이 진사로 학행이 있었다.
인로의 아우 원로는 4고을의 수령을 지내고, 그 아들 교가 생원으로 시문에 능했으며, 그 조카 탁이 선조때 좌의정을 지내고, 이순신, 곽재우, 김덕령을 발탁, 이순신 장군을 구원하는 등으로 나 라에 크게 공헌했다.
설곡의 아들 공권은 공민왕때 문과에 올라 집현관대제학을 지내고, 청원군에 봉해졌으며, 그 아 들 총이 문과급제로 태조때 춘추관학사, ′고려사′를 편찬했고, 탁이 문과급제로 우의정을 지냈으 며, 총의 아들 효문이 강원감사, 효충과 손자 옥경, 중손 윤증이 함께 군수를 지냈으며, 윤증의 증 손 곤수가 선조때 참판, 대사간을 거쳐 우승지로, 왕을 의주에 호종하고 지돈녕부사로, 명나라에 가서 병부상서 석성을 움직여 구원병을 보내게 했으며, 좌찬성을 지내고 호성 1등공신에, 서천부 원군에 봉해지는등 설곡의 후손에는 많은 현달한 이가 났으나, 대개 안동에는 살지 않았던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