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강술래와 더불어 몇 안되는 여성들만의 놀이로 안동지방에 잘 알려진 [놋다리 밟기]가 있다. 여러 가지 유래가 있으나 가장 잘 알려진 설은 다음과 같다.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왕후와 공주를 데리고 안동에 왔을 때 소야천 나무를 건너게 되었다. 피난길이라고 하나 왕의 행차가 너무 초라하고 또한 나루를 건너게 되자 부녀자들이 허리를 굽혀 인다리를 놓았다고 하는 것이 그 유래다.
이와 같이 [놋달리 밟기]에 관하여는 많은 유래설이 증명하듯 여러사람의 입에 오르나 [놋달리 밟기]를 포함한 민속놀이인 [금소동 지애 밟기]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심이 적다. 그래서 여자들만이 꼬깨를 만들어 싸움의 승패를 가려 여 성대장군의 위력을 과시하는 용감무쌍한 정신, 여성들의 자신감이 잘 나타난 [금소동 지애밟기]를 다뤄보고자 한다.
먼저 [지애]란 기왓장의 옛말로서 부녀자들의 상체를 구부려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일렬로 늘어 선 모습이 기와처럼 보여서 그렇게 부른 것이며 그 위를 밟고 지나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지 애밟기]라 이른 것이다. 놀이의 발상지는 안동군 임하면 금소 1,2동으로 놀이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 마을의 부녀자들은 2,3명씩 한조가 되어 [어하루여 놋다리야]라는 놋다리 밟기 노래를 부르며 동리를 주행하면서 점차 2동의 마을 안까지 간다. 14~15세의 소녀로부터 50여 세의 노부에 이르기까지 참가를 하게 되는데 한 동리의 부녀자가 200명 가량 모이게 된다. 계속 온 동리를 주행하면서 노래를 부르다가 야심하면 귀가한다. 이튿날 16일 월야에 다시 부녀자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동리 골목을 주행하다가 마침내 [터논] 에 접근하면 2동의 부녀자들도 다가와 흥겹게 놀면서 다시 골목을 누비다가 마침내 1동의 경계에 서로 접근하게 되면서 격렬한 꼬깨싸움을 시작한다.
14~15세 가량의 소녀를 힘쎈 부녀자의 어깨 위에 앉히고 그 앞에 억센 머리꾼 30명 가량이 둘러 써서 호위도 하며 공격도 한다. 적진을 뚫고 들어가 상대편의 소녀를 끌어내리면 이기게 되는데 싸움은 대단히 격렬하였으며 전체 인원이 꼬깨를 호위하는 형식으로써 그 진지함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때 [동부(1동)야 이겨라][서부(2동)야 이겨라]하고 함성을 지르면서 사기를 돋구고 흥이 있는 사 람들은 꽹과리, 북, 징등을 가지고 나와서 농악을 울려 기세를 돋구기도 한다. 동부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믿는 이마을 사람들은 격렬한 싸음으로 결국은 동부가 이기곤 하였다. 패한 쪽은 물러가서 곧 마을 경계인 [구무다리]에 가서 20명 가량이 긴 막대기를 들고 상대편 의 통과를 저지하려 진을 치고, 승리한 쪽은 즐겁고 풍요로움을 만끽하면서 신나게 놀다가 10여 명씩 어깨동무를 짜서 상대편의 막대기를 격렬하게 밀어젖히고 싸움한 후에 뚫고 나아간다. 그리고 자기 부락에 도착하면 춤과 환호성이 울리며 [농자는 천하지대본야]라는 푯말아래 농악을 울리면서 즐겁게 논다. 이렇게 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데 마지막 꼬깨싸움까지의 놀이를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얼얼이 청청
원을 지어앉아 서로 손을 잡고 제일 앞사람이 옆사람을 타넘으며 한 바퀴 돌면, 다음 사람이 잡고 있던 손을 타넘으면서 계속 줄을 이어가면 마침내 큰 하나의 원을 이루게된다.
실감기
각기 손을 잡고 달팽이 모양으로 흥겹게 뛰면서 선두로부터 겹겹이 감아들어가면서 노래를 부른다.
실풀기
달팽이 모양으로 계속 노래 부르고 흥겨운 모습으로 실을 풀게 되는데 대단히 혼란스 러워 보이지만 실지로는 질서정연하다.
지달배기
모두 풀린 실이 일렬로 늘어서면 선두가 뒤에 있는 꼬리를 잡으러 뛰어간다. 줄 앞사 람은 뒷꼬리가 붙들리지 않도록 막아주고 꼬리는 피하는데, 구불한 모습은 용모양을 이룬다. 이때 잡힌 사람의 수가 많고 적음을 가지고 승부를 낸다.
꿀집짓기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높이 치켜들고 이른바 동대문을 만든다. 여러사람이 허리를 잡고 일렬로 그 문을 통과한다. 통과하다 잡힌 자는 뒤에가서 서며, 되풀이하여 꼬리를 다따게 된다.
지애 밟기
한줄로 엎드려 다리를 만들고 그 위에 한사람이 지나가면 밟던 사람은 다시 다리를 만들어 준다. 두 팀이 만나는 곳에서 싸움이 시작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꼬깨 싸움
전위대가 부채꼴 모양으로 앉고 서서 꼬깨를 보호해 주기도 하며 상대편의 꼬깨를 넘어뜨리기 위해 공격도 한다. 먼저 꼬깨가 넘어지면 패한게 되며, 패한 조 한 조에 보조꼬깨 세 조가 서고, 싸움에서 이긴 팀은 계속 지애를 밟으면서 지나간다. 패한 팀은 뛰어가서 자기마을 경 계에서 20명씩 막대를 잡고 서서 적을 막는다. 이긴 팀은 10여명씩 어깨동무를 하며 전진하는데 이것을 [구무다리 싸움]이라고 한다. 패한 팀은 맥없이 뿔뿔이 흩어지고 승리한 팀은 농악이 선두가 되어 풍악을 울리면서 흥겹게 놀고 밤이 깊으면 귀가한다.
이상을 살펴보았을 때 지애밟기의 의의는 격렬한 꼬깨싸움장소가 마을의 경계지역인 구무다리로 써 이는 동과 서, 양과 음을 충돌시켜 화합한다는 뜻이라는 점, 또한 지애 밟기가 겨욹과 싸워 생산의 곡영을 환대하여 풍년을 소원하려는 상원이라는 점, 남자들이 놀이에 참가는 물론 구경도 못하게 한 것은 남서의존의 세계에서 탈피, 여성의 힘만으로도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는 자신 감을 보여준 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