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직 손씨는 안동 손씨라고도 하는데, 그 시조는 고려 현종때 중국 송에서 귀화한 순응으로, 현 종임금의 이름이 순이어서, 음이 같음을 피하여 손으로 사정되었다고 하며, 고려의 장군인 그 후 손 간을 중시조로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직에 입향한 유래는 상고할 길이 없으며, ′문헌통고′나 ′일직손씨세보′에는 고려장군 간 이 중시조라고 전하지만, 실제로는 충렬왕때 일직에서 나서 충선왕~충정왕 4대를 섬기고 좌리공 신 삼중대광에, 복주부원군에 봉해진 흥량을 그 중시조로 봄이 마땅하겠다.
그 족보에도 행적이 간략하나마 오르기는 흥량의 증조에서부터라 하겠으나, 흥량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웬만큼 구체적 인 행적이 적혀 있고, 그 위의 3대는 겨우 관직과 그 생몰 연대조차 알길이 없이 되어 있는바, 그 것은 그 무렵 선세의 사적을 담은 문헌이 전해지지를 않아서, 흥량의 사위인 배전의 셋째 아들 상지의 장적에 그 외조인 흥량으로부터 그 이상 4대의 이름과 관직이 올라 있음을 보고, 족보를 만들면서 그를 참고했기 때문이다.
지금 그 본향인 안동 일직면 송리에는 겨우 수십호가 조상의 터전을 지켜 살고 있으며 밀양 다 원을 주로하여, 영천, 김해등지에 옮겨 취락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겨우 수십호가 남아 옛마을을 지키는 형편이지만, 일직 손씨는 가장 오랜 토족의 하나로, 고려시대 한 때는 일직 고을의 주인 자리를 누렸을만큼 인물과 세력이 번성했던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