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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

상세설명

자원 설명

영해의 재령이씨는 한때 7 징사(徵士)를 배출하는 등 학행높은 선비를 많이 배출한 영남에서 알려진 문벌이다. 재령군(載寧君) 이우칭(李禹 )을 시조로 하여 영해에 정착하기는 중종때 현감을 지낸 함(涵)으로부터 비롯되는데 영해 나라골의 재령이씨가 일약 영남의 명문으로 올라서기는 이고장 안동에 인연을 갖게 됨으로서 말미암았다는 사실이다.
그것는 영해 입향조의 손자 함(涵)은 의령현감을 지냈으며, 함의 손자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이 퇴계학통의 재전거유(再傳巨儒)인 안동의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의 따님을 안주인으로 맞으면서 학행 높은 여러 아들들을 얻었기 때문이다.
석계는 병자호란에 삼전도의 굴욕이 있은 뒤, 분연히 과거를 단념하였으며 行檢으로 천거되어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산중에 숨어 생애를 보낸 지조높은 선비였으며 시사(詩詞)며 글씨에 빼어나고 부덕(婦德)과 재화(才華)를 갖추어 신사임당과 쌍벽을 이룬 부인 장씨와의 사이에 여러 어진 아들을 두었다.
맏아들 상일(尙逸은) 근시재 김해의 따님인 전실 김씨의 소생이었다. 도학에 깊고 예학에 밝아 학행으로 이름을 떨쳐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한결같이 학문에 전념한 존재(存齋) 휘일(徽逸)· 도산의 학통을 이어받아 깊이 이루고 많은 문인을 길렀으며 허미수의 천거로 조정에 나아가 대사헌,이조판서 등 요직을 지낸 갈암(葛庵) 현일(玄逸)· 또 그 아래로 항재(恒齋) 숭일(崇逸)·정우재(定宇齋) 정일(靖逸)·평재(平齋) 융일(隆逸)·광록재(廣鹿齋) 운일(雲逸) 등 7형제가 모두 학행으로 사림에 추앙되었고 또 갈암의 아들 밀암(密庵, 栽)은 성리와 역학에 깊은 학식이 있는 일대의 석학이었으며 평재의 아들 고재(顧齋) 만 또한 학문과 행덕으로 한 때를 울린 거유였다.
영남에서 재령이씨를 7 산림(山林), 7 현자(賢者)의 가문으로 일컬어지는데 7 산림은 석계를 비롯하여 그 아들 정묵재·존재·갈암·항채 그리고 손자 밀람·고재 등 석계 삼대에 걸쳐 학행이 높은 7분의 선비를 가르침이요 7현자란 석계의 아들 7인을 말하는데 그 중에서 존재와 갈암을 대표로 꼽는다.
안동의 재령이씨는 현종 초 석계가 대명동(지금의 豊山 壽谷)에 이거하면서 비롯되는데 그 아들 존재와 갈암이 안동에서 태어나 도학을 크게 이루었으며 갈암은 금양(錦陽·임하 금소)에서 강학하여 고장의 거유인 권병곡(權屛谷), 김제산(金霽山, 聖鐸) 등이 그의 문인이었다. 갈암의 아들 밀암과 조카 고재 또한 학행으로 크게 떨쳐 밀암은 금양에서 고재는 진곡(振谷)에서 많은 문도를 길러내었다.영덕 나라골에 그 종가와 함께 문호가 세거하며 영양 석보에도 동족마을이 있다. 지금 안동에는 약 40여호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