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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이씨

상세설명

자원 설명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왕조가 시작되면서 세상이 자못 뒤숭숭하고 어지러울 때 고려 태사(太師) 도(棹)의 후손으로 고려 조정에서 전농정(典農正)을 지낸 이웅(李雄)이 단연 벼슬을 버리고 사재감정(司宰監正)을 지낸 숙부 사경(思敬)과 함께 영남으로 내려와 숙부는 개령(開寧)에 전농공은 풍산현 사지( 池)에 전거(奠居)했던 바, 뒤에 그 자손이 하리마을에 옮겨와 세거하고 있다.
세조때 판서를 지내고 청백리에 녹선(錄選)된 이화(李樺), 영조때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올라 기사(耆社)에 들고 향리에 은퇴하여 계속된 소명(召命)에도 끝내 사양하고 나가지 않으매 영조임금이 화원(畵員을) 내려보내어 초상을 그려 올리게 할 만큼 두터운 예우를 베풀었던 나졸재(懶拙齋) 산두(山斗) 등 명신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후손들은 그리 번성한 편은 아니지만 입향한 지 500여년이 지난 본거지 풍산과 영풍 화기리, 청송 파전, 영덕 영해 등에 살고 있으나 그리 많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