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이래로 명인 거경(巨卿)을 잇달아 배출한 동래 정씨(鄭氏)는 나라의 명족(名族)으로 크게 울렸거니와, 그 한 갈래가 안동(安東)에 살기는 조선 태종(太宗)때 진사(進士), 세종(世宗)초에 결성현감(結城縣監)을 지낸 정구령(鄭龜齡)에 비롯되는데, 구령은 고려 상서(尙書) 좌복야(左僕射)를 지낸 정목(鄭穆)의 구(九)대손이다.
태종(太宗)때 문과(文科)에 올라, 지례현감(知禮縣監)으로, 향교(鄕校)를 창건, 교학과 예속(禮俗)을 처음 밝힌 정옹(鄭雍)은 구령의 맏아들이요, 세종(世宗)때 문과(文科)에 올라 예문관직제학을 거쳐, 진주목사(晉州牧使)를 지낸 정사(鄭賜)는 그 셋째 아들이다. 그(구령) 손자에서 十三人이 함께 文科에 올라, 문운이 더욱 떨쳤는데, 사(賜)의 아들 난종(蘭宗) 시호 익혜공(翼惠公)은 成宗때 三曹의 판서(判書)를 지냈다.
옹(雍)의 손자 환(渙)이 홍문관(弘文館)응교(應敎)로 연산군(燕山君)의 잘못을 간하다가 상주배소(尙州配所)에서 죽었고 난원(蘭元)의 증손 유일(維一)이 안동에서 나서, 권벌(權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진사(進士)·문과(文科)에 급제, <명종실록(明宗實錄)>편찬에 참여,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지냈으며, 환(渙)의 아들 윤기(允奇)가 성균생원(成均生員), 그 아들 원충(元忠)이 성균진사(成均進士), 원충(元忠)의 손자 영방(榮邦) 호 석문(石門)이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 성균진사(成均進士)가 되고 나서, 명리(名利)에 초연, 임천(林泉)에 숨어, 학행(學行)으로 사림(士林)에 추중(推重) 되었고, 그 아들 행( )이 또한 행검(行檢)으로 일컬었다.
이 고장에 있는 동래 정씨의 유적으로, 풍광(風光)이 명미한 송천(松川) 선어대(仙漁台)에 정영방(鄭榮邦)이 독서 소요(逍遙)하던 읍취정(相翠亭 그 후손이 다시 이룩했음)과 그 아들 삼(三)형제가 심은 모감주나무 환(桓)이 있으며, 그 증손 지언(之金彦 )이 강학(講學)하던 시사정(視思亭)이 있다.구령의 자손이 용궁 익장(龍宮 益庄)에 옮겼으며, 석문(石門) 영방(榮邦)의 후손은 안동 송천(松川), 예천(醴泉) 지보(知保), 영양 연당(英陽蓮塘)등에 세거(世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