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없음

순천장씨

상세설명

자원 설명

순천장씨 순천 장씨가 안동에 정착하기는 16세기초에 영천훈도를 지낸 장간이 의성 원흥으로부터 안동 성 남(일직면 명진동)에 옮김에서 비롯된다. 본래, 고려 건국공신 장정필을 근원으로 하는 안동 장씨는, 고려 중기 중서시랑을 지낸 장천로가 순천군에 봉해짐으로 해서 순천으로 분적된다.
그 6대손으로, 공민왕때에 벼슬하여 이조전서겸 서 운관사를 지낸 장달산이 나라 형편이 날로 어지러워 감을 개탄, 벼슬을 버리고 순천에 은퇴하매, 뒤에 조선 태조가 세 번이나 불렀으나 건달산중에 깊이 숨어 자취를 감추었으니, 일은이라고도 일컬었다.
그 아들 사검이 고려말에 사재소감을 지내고, 의성 원흥동에 옮겨 숨어 단가를 지어 망 국의 통한을 붙이고 단식 순절했으며, 또 그 아들 헌이 고려의 중추원녹사를 지내고, 태종이 여러 차례 불렀으나 끝내 나가지 않았으니, 이가 곧 삼은으로, 내리 3대가 절조를 온전히 했다.
그 아들 윤의가 비로소 조선에 벼슬 했으니, 무과에 급제, 훈련원참군을 지냈으며, 윤의의 아들 일신이 역시 무과급제로 진주, 경주판관을 거쳐 기장현감을 지냈는데, 안동 성남에 터전을 열어 정착한 영천훈도 간은 바로 현감 일신의 아들이다.
간의 아들 문보가 생원시를 거쳐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사성, 진주목사를 지냈으며, 문우가 봉직 랑으로 안변교수를 지내고, 문익이 생원으로 중추원녹사를 지냈다. 문보의 아들 일이 생원, 우가 진사로 문행이 있었고, 또 우의 손자 모식이 생원으로 성현도찰방을 지냈으며, 모식의 8대손 인환 이 고종초에 문과에 올라 사헌부지평을 지내고, 외척의 전횡, 관리의 부패등으로 정사가 어지러워 지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 성남에 물러와 문을 닫고 지냈다.
순천 장씨가 세거해 오는 일직 명진에 장문보의 유적 성남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