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에 승랑장을 지내던 강인석이 고려가 망하자, 개성에서 의흥(지금의 군위)에 낙향, 충순위 전력부위를 지낸 그 현손 귀형이 안동 가야곡에 옮겨왔고, 그 아들 희철이 명종때 절충장군을 지 냈으며, 그 아들이 이퇴계 문인으로 진사, 윤의 아들 진남이 가야곡에서 검암으로 옮겨 정착, 진 남의 아들 윤이 병자호란에 의병장으로 전사하여, 공조참의에 추증되었으며, 그 손자 한성이 박 천군수를 지내고, 고종때 기호가 문행이 있어, 장릉참봉을 지냈으며, 그 유집 서호유고가 간행되 었다. 300여년 세거해오는 검암에는 약 40호, 강원도 횡성에 200여호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