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학자인 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 선생이 영양 수비에 경정(敬亭)을 꾸미고 거처하다가 만년에 다시 송천(松川) 선영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그 아래다 정자를 짓고 읍취정이라 현판을 달았다. 공은 이곳에서 시를 짓고 세상을 잊고 노년을 보내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때는 경인년 봄(효종1, 1650)이었으나 공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그해 7월 7일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그 뒤 정자가 황폐해질 때마다 중수하였으나 마침내 건물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이에 송천파 주손인 정휘양옹이 팔을 걷고 나서 마침내 1980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건기문은 10대손 한모(漢模)가 지었다.
정씨문중
목조와가
조선중기
정영방(鄭榮邦:선조10, 1577-효종1, 1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