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자는 당초 삼당(三塘) 김영(金瑛)공이 서울 청풍계(淸楓溪)에 지어 거처하던 것이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공이 세상을 떠난 중종23년(1528) 이전임에는 분명하다. 공의 손자 창균 김기보(金箕報)가 안동 풍산 소산(素山)으로 낙향한 이후에는, 공의 종증손 김상용(金尙容)이 수리하여 사랑방으로 사용했다.
이후 주로 김상용의 후손들이 한말(韓末)까지 수 백년을 관리해 왔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1910년 경 어느 일본인 회사 소유가 되어 헐릴 위기에 처하자 이 정자를 지은 삼당공의 후예들이 본향(本鄕)인 소산으로 이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씨문중
목조와가
조선 중기
김영(金瑛: 성종6, 1475-중종23, 1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