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조성당(操省堂) 김택룡(金澤龍)공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사림들이 묘우를 세워 강학과 춘추로 제향을 받들어 오던 장소였다. 정조10년 병오에 사림에서 한천사(寒泉祠)를 짓고 위패를 봉안했다. 묘우 상량문은 집의 이급(李級)이, 봉안문은 이세원(李世源)이 찬했다. 그러나 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복설되지 못했다. 이후 사림에서는 묘우 터에다 와운대 위에 있던 한천정사를 이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건 상량문은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가 찬했다. 공은 만년에 와운대(臥雲臺) 위에 와운정(臥雲亭)을 짓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당시에 공이 후진을 양성하던 정자 앞 강변에 오동나무·소나무·버드나무 등을 심어 ‘강림(講林)’이라 하였는데, 이곳에서 공은 제자들과 강론하였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조성당의 고조부인 효우(孝友) 대에 한실로 입향하면서부터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조성당의 고조부인 효우(孝友) 대에 한실로 입향하면서부터 대대로 후손들이 살게 되었다. 조성당은 한실 덕현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천정사에는 공을 그린 두 점의 초상(肖像)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화공은 미상이다. 현재 공의 학덕을 기르는 계가 있는데 ‘한천정사수계(寒泉精舍修契)’라 한다. 계원은 대략 350여 명에 이르고 있는데 한천사(寒泉祠) 복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 명 찬
목조와가
조선중기
김택룡(金澤龍:명종2, 1547-인조5, 1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