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정은 첨정공(僉正公) 권호(權皥)의 후손들이 그를 추모하여 건립한 정자다.
의정공(議政公)의 아들 야옹공(野翁公)은 충정공(庶定公) 권벌(權橃)의 백씨로서 벼슬에 뜻이 없어 사직하고 돌아와 고풍(高風) 후덕(厚德)으로 성(盛)한 복을 이루었다. 그의 손자 첨정공(僉正公)은 옥봉(玉峯) 권위(權暐)의 계시로서 책상을 마주하고 학문을 닦았으나 의연히 무예를 닦아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첨정에 올랐다. 당시는 임진왜란이 끝남에 조정에서는 다시 문을 숭상하여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 조그마한 정자를 세웠다. 이 정자가 금오정이다. 공이 세상을 떠나자 정자도 따라 퇴락해 삼백여 년이 흘렀다. 무자년(1948)에 공의 11세손 태응(泰應)이 개연히 “오헌(梧軒)의 옛 터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으나 도계 영역임에는 틀림없을 듯하니 다시 집을 세워 조석으로 조상을 첨모(瞻慕)할 곳으로 삼을 수 없겠는가” 하였다. 그리하여 거처하는 곁에 알맞은 터를 택해 약간의 방과 마루를 꾸몄다. 이는 전적으로 조상을 추모하는 정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금오정중건기」는 1949년 족 후손 권상규(權相圭)가 지었다.
권 영 수
목조와가
1950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