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안동의 인물 - 문화유산 - 안동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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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학문과 예의를 숭상했던 유교문화의 맥! 민속문화의 보고!!

안동의 인물

안동의 인물

김해

분류 :
문화 > 인물
상세설명

자원설명

이조 선조때 의병대장인 공의 자는 달원, 호는 근시재이오 본관은 광산이다. 읍청정 부의의 아들로 1555년(명종 10)에 와룡면 오천동서 태어났다. 천거로 참봉을 제수하였으나 나가지 않고 1588년(선조 21)에 사마시를 거쳐 이듬해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를 지내고 검열로 있을때 사국에서 사초를 태운 사건에 연루되어 면직되고 1589년 정여립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삭직되었다. 공은 소시부터 성현의 가르침에 뜻을 두어 퇴도선생에게 직접 교훈을 받지 않았으나 그 유훈을 절선하였다. 또 서재에 고요히 앉아 깊이 생각하여 얻은 바가 있으면 기록하여 두고 의심하는 구절에는 월천, 학봉, 서애선생에게 질문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공이 전리에서 눈물을 머금고 죽음을 맹세하고 의병을 참가하니 영남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좌우부장에 이정백, 배용길을 삼고 안동.의성.군위 등지에서 분전했다. 훌륭한 의병대장을 모시니 의병들의 사기가 크게 떨쳤고 글을 초유사 김성일에게 보내니 그 글뜻이 비장강개 하였다. 이듬해 평양 탈환전에서 수십명의 적을 살해하고 계속 추격 남하하여 밀양에서 군사를 정비하여 경주로 이동한 후 진중에서 전사하니 수가 38세였다. 선조는 그 충성을 포장하여 수찬을 증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