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종개-안동의 인물 - 문화유산 - 안동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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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학문과 예의를 숭상했던 유교문화의 맥! 민속문화의 보고!!

안동의 인물

안동의 인물

류종개

분류 :
문화 > 인물
상세설명

자원설명

공은 선조때 의병장으로 자는 계유, 본관은 풍산이며 1558년(명 종 13) 고산 빈의 아들로 태어나 1579년(선조 12) 22세에 진사가 되고 1585년(선조 18) 식년문과 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 전적을 역임하였다. 공은 그 천품이 고결하고 강직하며 주역 읽기를 좋아하였으며, 1592년(선조 25) 부모 상중에 임진왜란을 당하여 나라가 어수선한때 선조 임금의 행차가 서쪽으로 몽진한다는 소식을 듣고 탄식하여 가로되 "자식이 되어서는 효도를 위해서 죽고, 백성이 되어서는 나라에 충성을 다하다 죽는것이 사람된 도리거늘 국난을 당하여 이대로 안일하게 있을 수 없다"하여 김정언 중청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무리와 맹세하고 의병대장이 되어 태백산을 근거로 왜병을 무찌르다가 소천에서 적장 모리군의 복병을 만나 혈전을 하다가 전사했다. 조정에서는 그 공을 가상히 여겨 참의를 추증하고 정려를 내렸으며 향인들이 공의 위패를 반천서원에 봉향했다. 후사가 없어 봉역이 무너졌으므로 박태적 군수가 그 의를 사모하여 사비를 내어 묘갈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