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소산동 동야고택-건축물/유적지 - 문화유산 - 안동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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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학문과 예의를 숭상했던 유교문화의 맥! 민속문화의 보고!!

건축물/유적지

안동 소산동 동야고택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212
상세설명

자원설명

  • 분 류 : 가옥
  • 지 정 :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93호
  • 지정일 : 1987. 12. 29
  • 시 대 : 조선시대
  • 소재지 :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212

이 건물은 안동김씨 19대손 김중안(1639∼1705)이 지었다고 하나 건축년대는 확실하지 않는 가옥이다. 동야공 김양근(1734∼1799)이 이 집에서 태어나 수학하였다. 그는 영조때 중광문과에 급제한 뒤 어전의 면시에서 답안에 공자가어의 ′노인동야필사′를 인용하였던 바 임금이 "동야선달은 어디있나"라 부르면서 시권을 외우라고 명한 것을 기념하고자 호를 동야라 하였으며 이로 인해 이 집의 이름이 되었다.
소요산록에 터를 잡아 동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一자형 사랑채와 뒤에 형의 안채가 튼 口자형 배치를 이루고 있다. 안채는 막돌쌓은 높은 기단 위에 방주를 세운 민도리집이다. 안마당을 면한 중앙 4칸 중 좌측 2칸이 안대청이고 우측 2칸은 좁은 툇마루 뒤쪽에 통칸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대청 상부는 들보를 높게 걸친 소박한 3량가로 동자주를 세웠다. 안방 천장을 고미반자로 꾸미고 더그매로 다락을 꾸며 전면에 낸 개구부에서 출입케 하였다. 안방 우측에 접하여 부엌, 고방과 뒤주를 달아내어 우익사를 이루었고, 대청의 좌측에는 건너방과 그 앞쪽으로 통래칸을 건너 사랑방과 사랑마루방을 배치하여 좌익을 이루었다. 특히 사랑마루방은 안마당쪽으로는 문얼굴 없이 벽체로 차단하였고 외부 전면과 측면에 양개판문을 설치하여 출입케 하였는데, 안동지방에서는 튼口자 주택의 형정침에 사랑채의 기능을 포함시킨 예는 흔하지 않다.
사랑채는 一자 5칸 건물로 원래는 초가 지붕이었는데 사랑채라기보다는 앞채라 부르는 것이 어울릴듯한 건물이다. 막돌 덤벙주초에 각주 세운 민도리집으로 좌측에서부터 전면과 측면이 개방된 마루 1칸에 이어 큰 실이 배치되었는데 이 부분은 사랑방이라기 보다 서당 또는 야학을 하던 곳이라 한다. 마루 천장은 고미반자로 꾸몄고 뒷벽에는 벽감을 설치하였던 흔적이 있는데, 이는 사당(사랑채 우측 전방에 있었다 함)이 소실되어 후설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큰사랑방 우측에는 마구간, 방앗간, 행랑방이 연접 배치되어 있다.
1700년 전후하여 건축된 것으로 추측되는 매우 소박한 건축이다. 대청의 경우 후대에 증개축을 통하여 사랑채 등의 모양새를 번듯하게 갖추는 예가 많으나 본 고택은 문얼굴 등에 다소 변형이 엿보일 뿐 소박한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어 온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형 정침에 사랑채의 기능이 포함되어 있고, 큰 사랑방이 있는 사랑채는 원초적인 모습의 초가로 남아 있는 등 안동지방에서는 보기드문 평면구성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