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정-건축물/유적지 - 문화유산 - 안동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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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학문과 예의를 숭상했던 유교문화의 맥! 민속문화의 보고!!

건축물/유적지

산수정

주소
풍산읍 마애길 70-31 (마애리 92)
상세설명

자원설명

  • 분 류 : 가옥
  • 지 정 : 경상북도민속문화재 제122호
  • 지정일 : 2000. 9. 4
  • 소재지 :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 92

호봉 이돈(1568∼1624) 선생이 관직을 떠나 고향에 돌아와 학문연구와 후배양성에 전념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언제 세웠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광해군 2년(1610)경 이라고 전해지며, 건물 내부의 기록을 통해 동야 김양근(1734∼1799)이 황폐화된 것을 고쳐지었음을 알 수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대청을 사이에 두고 온돌방을 만들었으며, 양끝과 앞쪽에 난간을 설치한 툇마루를 두었다.
건물에서 특별한 건축구조적 특징을 찾아볼 수 없으나, 조선시대의 정자건축을 잘 나타내고 있어 가치가 크다.
산수정(山水亭)은 조선 선조, 광해년간에 관직을 수행한 호봉(壺峰)(1568∼1624) 이돈(李燉)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마애에 돌아와 학문에 정심하고 후진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그의 본관은 진성(眞城)이며 훈련참군 흥양(訓練參軍 興陽)의 현손이고 원회(元晦)의 아들로 마애(磨厓) 출신이다. 선조 3년(1601)에 문과에 급제하고 사헌부지평, 예조정랑을 지냈으나 영해부사로 좌천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1610년경 산수정(山水亭)을 지은 것으로 전해 오고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건물이 퇴락하여 동야(東야) 김양근(金養根 1734∼1799)선생이 쓴 상량문(上樑文)이 남아 있어 당시에 중건(重建)을 하였음을 알 수 있고, 최근에도 보수를 한 흔적이 남아 있다.
안동시에서 약 25㎞ 떨어진 풍산읍 마애리에 위치한 산수정(山水亭)은 마애(磨厓)마을 앞을 흐르는 낙동강변 강둑의 울창한 송림(松林)과 강건너 적벽삼봉(赤壁三峰)을 마주한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나즈막한 평지에 정남향에서 서측으로 조금 틀어 강과 송림(松林)이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건물의 사방으로 토담을 돌리고 건물 전면의 토담 중앙부에는 사주문을 설치하였고 건물의 배면으로 토담 중앙부에 역시 후문을 내어 놓았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 정면은 낮은 기단위에 자연석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우고 두리기둥 사이를 난간으로 처리하여 정자 건축의 멋을 돋우고 있다. 평면구성은 가운데 어칸의 대청을 전면의 3칸 툇마루와 이어서 우물마루를 깔았고, 전면의 툇마루는 측칸을 한칸으로 넓히고 툇마루 좌우측면으로 판벽과 두짝 밖여닫이 골판문을 설치하여 배면의 두짝 골판문과 함께 풍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양협칸은 온돌방 앞에 한칸 툇마루를 놓았으며 툇마루 전면 3칸에는 모두 난간을 설치하였다. 온돌방과 툇마루 사이에는 띠살창 밖여닫이 문을 달았고, 방과 어칸의 대청마루 사이에는 격자살 쌍분합 들장지 문을 달아 대청과 방 사이에 개방감을 배려하였으며, 좌우 온돌방 측면의 중인방 위에는 바라지창을 내어 환기와 광창을 겸하게 하였다. 온돌방의 천장은 고미반자 마감을 하였고, 대청상부 가구는 5량가에 굽이 높은 판대공을 세워 종도리와 장혀를 받고 있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