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도-안동의 인물 - 문화유산 - 안동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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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학문과 예의를 숭상했던 유교문화의 맥! 민속문화의 보고!!

안동의 인물

안동의 인물

이만도

분류 :
문화 > 인물
상세설명

자원설명

공은 한말에 문신으로 자는 관필, 호는 향산이며 본관은 진성이다. 1842년(현종 8)에 대사성 휘준의 아들로 태어나 형 휘택에게 입양했다. 예안출신으로 1866년(고종 3)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이 되고, 병조좌랑. 정언을 지낸 후 부친상으로 사직했다. 뒤에 부수찬으로 복직하고 1875년 부교리, 장령, 지평, 병조정랑을 거쳐 이듬해 집의가 되어 일본과의 병자수호조약을 반대 하다가 화를 당한 최익현을 변호하다가 파직되었다. 후에 복직하여 사성.응교.장악원정 등을 거쳐 양산군수로 부임하였다.
1878년(고종 15) 다시 집의가 되고 1882(고종 19) 공조참의에 올랐다가 곧 사직하고 이어 동부승지에 입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고향에 내려가 학문에 전념했다. 1894년(고종 31)에 갑오경장을 반대하였고 1895년 8월 을미사변에 명성황후 민비가 시해되자 공은 안동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제 침략에 항거했다. 1905년(광무 9)에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다시 조약에 찬성한 5적신의 처형을 주장 상소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의 소식을 듣고 의분을 금치 못하고 공은 24일간 단식하고 순국하였다.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