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 유허비-비석/탑/불상 - 문화유산 - 안동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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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탑/불상

역동 유허비

주소
와룡면 오천리 1227-2
상세설명

자원설명

  • 분 류 : 건물
  • 지 정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0호
  • 지정일 : 1973. 8. 31
  • 시 대 : 조선시대
  • 소재지 :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1227-2
  • 소유자 : 우성구

이 비는 고려후기의 학자 우탁(禹倬)(1263∼1342)의 구거지(舊居址)에 세워진 비이다. 그는 진사 천규(進士 千珪)의 아들로서, 자가 천장·탁보(天章·卓甫)이고 호는 역동(易東)이며, 시호(諡號)는 문희(文僖)이다. 본관은 단양(丹陽)으로 역학·복서(易學·卜筮)에 통효(通曉)하였으며, 처음으로 정주학(程朱學)을 연구 전수하였다고 한다. 1308년(충선왕 원년)에 왕의 실덕(失德)을 간하다가 예안에 퇴거하여 우유림천(優遊林泉)하였다.
충숙왕대에 누차 소명(召命)이 있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후에 성균관 제주(成均館 祭酒)로 치사(致仕)하였다.
원래 예안면 의양동(禮安面 宜陽洞)에 있던 것을 1976년 4월 안동댐 건설로 현 위치에 이전한 것이다.
면은 너비가 77cm이고 비신의 높이가 190cm이다. 비문에 "이호지삼백선생시도학예의절조삼자시의(里號知三白先生始道學禮儀節操三者是矣)"라고 한 점으로 보아, 예안(禮安)의 구거지삼리(舊居址三里)의 이명(里名)이 역동(易東) 자신의 학덕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인소애모여차후이백여연퇴도부자건원어구거북십이강상여다사사지(人所愛慕如此後二百餘年退陶夫子建院於舊居北十里江上與多士祀之)"라고 한 점으로 보아 퇴계(退溪)가 예안(禮安)의 역동서원(易東書院)을 세웠음을 알 수 있고, 1789년(정조 13)에 향인과 후손들이 유허에 비를 세웠으며, 그 6년 후에 안동부 북쪽의 정정산(鼎井山)에 묻혀 있던 묘갈(墓碣)이 발견되어 성봉분(成封墳)하였다고 한다.
지금의 비는 1880년(고종 17) 4월에 옮겨 세우고 陰記(陰記)를 새긴 것이다. 1789년(정조 13)에 향인·후손(鄕人·後孫)들이 세운 유허비와의 관계는 알 수 없고, 이 비의 말미에 후학 한성부우윤 진성 이휘재(漢城府右尹 眞城 李彙載)가 찬(撰)하고 재녕 이우량(載寧 李宇亮)이 비지(碑誌)를, 비음(碑陰)은 전경상도도사 김흥락(前慶尙道都事 金興洛)이 쓴 것으로 적혀 있다.
또 末尾에 "정묘기유후구십이연경진사월 일이수각음"("正廟己酉後九十二年庚辰四月 日移竪刻陰")이라고 하여 1789년 당시의 입비(立碑) 사실이 분명한 점으로 보면, 구비(舊碑)를 새로이 대체하였거나 혹은 개각·이건(改刻·移建)한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여하튼 퇴계(退溪)가 우탁(禹倬)의 서원(書院)을 세운 사실과 전후 양차에 걸쳐 그의 유허비(遺墟碑)가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큰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