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 영정 후사본 및 금서대-전적/유물 - 문화유산 - 안동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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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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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 영정 후사본 및 금서대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태사길 69-7 (옥정동 439-6)
상세설명
  • 분 류 : 문서
  • 지 정 :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63호(1994. 11. 2)
  • 시 대 : 조선시대
  • 소재지 : 안동시 옥정동 439-6

이 그림은 1827년(순조 27)에 그려진 농암 영정의 모사본으로 규격은 126×105cm이며, 관복띠인 금서대는 폭 3.5cm이다.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 1467∼1555)는 영천인으로 1498년 문과에 급제하여 안동부사 경상도관찰사 형조참판을 거쳐 1542년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치사(致仕)고 고향인 예안으로 낙향하여 89세로 졸하기까지 자연을 벗하여 시를 짓고 제자를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다.
농암영정 후사본은 농암이 경상도 관찰사 재직시인 1536년 동화사의 옥준상인(玉埈上人)라는 스님이 그렸다고 전하는 보물 제 872호 이현보영정을 꼭같이 옮겨 그린 모사본(模寫本)이다.
「영정개모시일기(影幀改模時日記)」 의하면 1827년 후손들이 영정의 부식을 염려하여 모사해 둔 것으로서 당시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7)의 천거로 소당 이재관(小塘 李在寬 1783∼1837)이 예안의 분강서원에 내려와 그렸다고 한다.
이 그림은 원본과 같은 규격의 매우 충실한 모사본으로서 원본을 가감없이 정확히 옮기고자 한 의도가 엿보인다. 이 후사본에서 보이는 가장 두드러진 원본(原本)과의 차이점은 서안 가운데 펼쳐놓은 서책의 표현으로서 원본(原本)에는 입체감이 없는 반듯한 평행사변형으로 그려져 있으나 후사본에는 책에 부피감을 주어 자연스럽게 펼쳐놓은 입체적 표현으로 되어 있다.
금서대는 농암 선생이 관직에 있을 때 사용했던 관복띠로 전하는 것으로서 폭 3.5 cm 의 가죽 바탕에 비단을 바르고 무소뿔 금속 등으로 장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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