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천 호종일기-전적/유물 - 문화유산 - 안동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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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유물

운천 호종일기

주소
임하면 내앞길 5-4 (천전리 279)
상세설명
  • 분 류 : 문서
  • 지 정 : 보물 484호 (1968. 12. 19)
  • 시 대 : 조선시대
  • 소재지 :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279

이 책은 김용(金涌 1577∼1620)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때에 의주로 피난가는 선조를 호종하면서 지은 일기체의 수고본(手稿本)이다. 金涌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도원(道源), 호는 운천(雲川)으로 안동에서 출생하였으며,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 1538∼1593)의 조카이다. 1590년(선조 23) 증광시(增廣試)에서 병과(丙科) 1인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子)·검열(檢閱) 등을 역임한 후 사환(仕宦)을 단념하고 고향에 돌아와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썼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안동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적과 싸웠고, 다음 해에 선조(宣祖)가 피난한 곳으로 쫓아 올라가 왕을 호종하면서 교리(校理)에 임명되었다.
이어서 독운어사(督運御史)·체찰사종사관(體察使從事官) 등에 임명되어 전란의 타개에 노력하였으나, 1598년(선조 31) 반대파의 모함을 받아 예천군수(醴泉郡守)로 외직(外職)에 나가게 되었다.
1609년(광해군 1) 태상사정(太常寺正)으로 편수관(編修官)이 되어 {선조실록(宣祖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이어서 여주목사(驪州牧使)로 재직하다가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크기는 가로 16cm, 세로 30cm이며, 3책으로 되어 있으며 표제(表題)는 ′운천선조호종일기(雲川宣祖扈從日記)′이다. 내용은 선조를 모시고 의주(義州)로의 피난중에 직접 체험하고 견문한 사실들을 그대로 기록(記錄)한 것으로, 김용 자신의 사생활은 물론 당시에 일어난 정치·군사·외교 등 여러 부문을 상세히 기술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임난의 타개와 이 시기에 일어난 사회상의 전반을 이해할 수 있음으로 당시 사회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밖에 김용의 저술로는 {경연진대(經筵秦對)}3책이 있는데, 이는 그가 경연관(經筵官)으로 활약하면서 선조에게 시강한 내용을 자필로 적은 것으로서 이 역시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후일 그의 저서들은 {운천집(雲川集)}6권 3책이 간행되었다.

위치 설명

안동시내에서 영덕방면 34국도를 따라 가다가 임하 보조댐을 지나 첫번째로 만나는 마을에 있다. 20분 정도 소요.

교통편

안동시외버스터미널 옆 버스승강장(교보생명 앞)에서 11번 버스 이용.(25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