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류씨 금계재사-향교/서원/서당/재사 - 문화유산 - 안동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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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학문과 예의를 숭상했던 유교문화의 맥! 민속문화의 보고!!

향교/서원/서당/재사

풍산류씨 금계재사

주소
서후면 권태사길 116 (성곡리)
상세설명

금계재사는 조선 시대의 문신 류중영(柳仲郢)의 묘소를 돌보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재사에서 남동쪽으로 약 450m 떨어진 언덕에 류중영의 묘소가 있다. 류중영은 학문과 어진 정치로 칭송을 받았던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혼란스러운 정국을 잘 이끌었던 명재상 류성룡 형제의 아버지이다. 재사는 앞에서부터 영모루와 소루, 대문간채, 동재, 숭실재와 동부속채가 '口'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재사의 중심 건물인 숭실재는 제관들이 머물며 제수를 준비하고 음복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원래 능효사라는 사찰에 속한 건물이었으나 풍산 류씨 문중에서 인수하여 재사로 사용하다가 1558년에 고쳐 지었다. 1706년 영모루를 짓는 등 18세기 초부터 다른 건물들을 짓기 시작하면서, 금계재사는 전면에 2개의 누를 둔, 큰 규모를 이루게 되었다. 벽체 구성, 창호의 형태, 공포 양식 등 17세기 이전 건축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풍산류씨 문중은 조상의 제사를 담당하는 족회소(族會所)를 조직하였으며,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올리는 과정을 문서로 남겨 후손들에게 전승할 수 있게 하였다. 영모루에 걸려있는 족중입의(族中立議)는 류운룡이 작성한 것으로 제사를 모시는 후손들의 책임과 의무를 정리한 7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 규모
    . 수량 : 1동 목조와가 겹처마맞배집

  • 시대구분
    . 조선시대

  • 형태/방법/업적
    안채를 중심으로 동측에 사랑채, 서측에는 문간채가 있고 안채와 연접한 누(樓)와 좌우 익랑채는 본 건물을 인수한 후 증축한 것으로 좌우에 방을 꾸몄다. 몸채의 건축양식은 전면에서는 내외일출목(內外一出目)의 앙설(仰舌)로 된 이익공식이고, 후면에서는 초익공식인데 옛 양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현재 풍산류씨의 후손 류상붕(柳相鵬)이 소유·관리하고 있다.

  • 문화재 지정여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46호(1982.2.24)

  • 관련 인물 및 유적
    . 풍산부원군(豊山府院君) 입암(立巖) 류중영

  • 참고 자료
    . 안동문화원,1994,안동군지정문화재 편람,영남사(안동),p.158-159

위치 설명

천등산의 봉정사로 가는 길목에 안동권씨 능동재사 및 신도비와 인접하여 있다.

교통편

안동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에서 51번 시내버스로 40분 가량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