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원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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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이천동 710
- 전화
제비원 미륵불을 벤 이여송
임진왜란 당시에 청병으로 명나라에서 온 이여송은 난이 평정되자 우리나라의 훌륭한 인물이 날 자리를 찾아 혈을 끊었다고 한다. 이여송이 제비원 앞을 지나게 되었을 때 말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사방을 둘러본 이여송은 미륵불을 보자 칼로 목을 쳐서 떨어뜨렸다. 칼로 목을 벤 까닭에 미륵불의 목부분에는 아직까지 가슴으로 흘러내린 핏자국이 있고, 왼쪽 어깨에는 말발굽의 자국이 있다. 당시에 떨어진 목은 땅바닥에 뒹굴고 있었는데 어느 스님 한분이 와서 떨어진 목을 제자리에 갖다 붙이고 횟가루로 붙인 부분을 바르면서 염주 모양으로 불록불록 나오게 다듬어 놓았다.
제비원 미륵불을 조각한 형제
어떤 형제가 일세에 뛰어난 조각가가 되려고 열심히 노력을 하였다. 형제 가운데 어느 한쪽은 당대 제일의 조각가가 될 수 있지만 한쪽은 둘째밖에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뜻을 이루지 못한 한쪽은 죽기로 했다.
일정한 기간을 두고 미륵을 만드는 내기를 했다. 동생은 열심히 돌을 다듬었으나 형은 빈둥빈둥 놀기만 했다. 약속한 날이 되자 동생은 그날까지 미륵을 완성하지 못했으나 형은 미륵의 머리만 조각하여 바위 위에 얹어 훌륭한 불상을 만들었다. 동생의 미완성 조각은 개천에 굴러다닌다고 하며 제비원 미륵불상은 목부분을 보면 이어서 만든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제비원과 법룡사 절짓기
옛날에 절을 짓는 기술이 비슷하게 뛰어난 두 대목이 있었다. 기술이 막상막하였기 때문에 서로 경쟁 의식이 강해 법룡사와 제비원 절을 지은 대목은 자신이 죽어도 절과 자신의 이름은 영원히 남을 것이라며 제비원 절 지붕 위에서 뛰어내렸다. 대목이 뛰어내리자 제비가 되어 푸른하늘 위로 날아가버렸다. 이루 사람들은 연비원(燕飛院)으로 부른다. 후에 법룡사는 불타 없어졌지만 연비원은 그대로 남아 있다.
제비가 된 목수와 욱바우골
제비원 절에는 난간이 있다. 목수가 이 난간 집을 짓기로 구상했다. 목수는 절 밑 부분부터 정성들여 지어 올라갔다. 절을 다 지은 뒤에 내려 갈 방법은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 구상대로 난간집을 지은 목수는 제비가 되어 날아가버렸다.
제비원의 미륵불이 만들어지기 전에 큰 바위 둘이 그 자리에 좌정(坐定)하려 했으나 현재의 미륵불이 먼저 좌정을 해 바위 하나는 제비원 넘어 욱바우골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현재의 미륵불은 먼저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불도들이 받들어 모시는 미륵불이 되었다. 욱바우골의 바위는 이것이 원통해 울면서 나날을 보내게 되고 사람들에게 우는 바위로 알려지게 되어 욱바위라 불리게 되었다.
안기동 석불좌상, 이천동 석불상, 마애동석조비로사나불좌상
안동시,1991,안동의 얼,영남사,p.105-110
안동시청문화관광과 054-851-6392
안동에서 5번국도 영주방향으로 15km지점
안동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에서 54번 시내버스로 20분 가량 소요(6㎞ 정도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