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황당 부엉이-민요/구비문학/민속놀이 - 문화유산 - 안동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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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학문과 예의를 숭상했던 유교문화의 맥! 민속문화의 보고!!

민요/구비문학/민속놀이

사진없음

성황당 부엉이

상세설명

자원설명

안동군 일직면 원호동 마을곁을 맑게 흘러내리는 조그만 내를 거슬러 올라가면 커다란 느티 나무 가 한 그루 서있다. 오랜 옛날 이 고목으로 인한 큰 걱정거리가 마을사람들을 불안하게 했 었다. 어느 해 정월 대보름날 즐거웠던 달불놀이도 끝나고 모두들 피곤하게 잠자리에 든 삼경쯤 되어 서 난데없는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느티나무 있는곳에서 들려왔다. 부엉이 소리는 구슬프고 처량 했으며 으시시한 기분을 자아내어 마을 사람들은 어쩐지 불쾌한 듯 가슴을 파고드는 부엉이 울음 소리에 밤새 잠을 설쳤다. 다음날 밤부터 부엉이는 울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그 소리를 사 람들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해 마을사람 하나가 이름모를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뜨 고 말 았다. 백방으로 약을 쓰고 의원을 대었지만 허사였다. 마을사람들은 그 사람의 죽음을 흔 히 있 을수 있는 불치의 질병쯤으로 생각하고 그 해를 보냈다. 그 다음해 정월 대보름이었다. 삼경이 되도록 흥겹게 하루를 보낸 마을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 잠자리를 준비하였다. 삼경이 되 자 또 이전 해와 같이 그 느티나무 위에서 부엉이가 울었다. 그 소리는 더욱 처량하고 간장을 후비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불안에 쫓기며 하룻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과연 그해에 또 한사 람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었다. 이렇게 해마다 정월 대보름엔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마을 을 불안케 했으며 꼭 한사람씩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죽어갔다. 매년 이런 변괴가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은 정월 대보름이 가까워 오면 공포에 떨게 되었 다. 사 람들은 도대체 그 연유를 조금도 알 수 없었으므로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 없었다. 그러나 막연 히 매년 그 공포와 죽음을 당할 수 만은 없었다. 이즈음 인근 송리동에 후산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새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그 뜻을 알아 들을 수 있는 특이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어느 화창한 봄날 후산은 친구들 과 마을 정 자에서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정자옆 회나무가지에 참새 두 마리가 날아와 지저귀고 있 었다. 그 소리를 무심히 듣고 있던 친구 한 사람이 후산을 돌아보며 "여보게 후산 저 참새는 왜 저리 우는지 알겠는가?"하고 농담조로 물었다.
조용히 참새 울음소리를 듣고 있던 후산을 고개 를 들 며, "저 참새는 남후면 구암동 황씨집 마당에 있는 벼를 까먹지 못해서 저렇게 울고 있구 만."하고 대답했다. 농담으로 그것을 물었던 그 친구는 물론 모두들 뜻밖에 그런 대답을 듣고 한편 놀랍 고 한편 믿어지지 않아 이상스런 눈초리로 후산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어떤 대답 이 나 올까 호기심을 가지ㅗ "그러면 참새는 왜 그 벼를 까먹지 못하는가?"하고 물었다. 이 물음 에 후 산은 이번에는 망설임도 보이지 않고 "그집 할멈이 긴 장대 끝에 검은 헝겊을 달아 휘휘 참새를 쫓고 있으니 어찌 까먹을 수 있나?"하고 대답했다. 흡사 보고있는 것처럼 말하는 후산을 모두 들 믿지 못하면서도 "허지만 자네가 어찌 참새울음소리를 듣고 그렇게 알아낼 수 있는지 도무지 못 믿겠는걸?"하자 후산은 오히려 귀찮다는 듯이 "그렇게 못믿겠거든 가서 보고 오게나"하 고 틍 명스럽게 말했다. 모여있던 사람들이 내심 공연한 짓이다 싶어 하면서도 남후면 구암동으 로 사 람을 보내 알아보기로 하고 하인을 보낸 즉 얼마후 달려온 하인의 말은 후산이 말한 그대로 였다. 이렇듯 새의 소리를 듣고 그 원인까지 알아맞춘다는 후산의 이야기를 들은 원호동 사람들 은 후 산을 찾아갔다. 마을 사람들은 정월대보름날의 부엉이 소리 때문에 겪은 고충을 설명하고 그 연 유를 물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후산은 이윽고 눈을 뜨더니 별안간 "정성 이 부족하오, 정성이...."하며 마을 사람들을 꾸중하더니 축문을 지어 내주면서 "정월 대보름 전날 밤 삼경에 이 축문을 그 느티나무에 걸고 정성껏 제사를 지내면 괜찮을 것이고"하고 일러 주었 다. 그 다음해 마을 사람들은 1년동안 집안에 변고가 전연없고 인척간에도 다춤이 전혀 없 는 부 유한 사람을 제관으로 뽑았다. 제관은 사흘동안 모든 세속적인 것을 끊고 엄동설한의 차가 운 물 에 온몸을 깨끗이 하였다. 대보름 전날밤에 마을 사람들은 느티나무 둘레에 높은 제단을 쌓아 집집마다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차려놓았다. 심신을 정결히 한 제관이 앞장서 축문을 낭독하 였다. 이튿날 밤 즉 정월대보름날 삼경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마음은 오늘밤에 과연 부 엉이가 울까하고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다. 이윽고 삼경이 되자 사람들은 궁금하기는 하지만 더욱 큰 조 바심과 공포에 몸을 떨었다. 그때였다. 고요한 적막을 깨뜨리고 "부엉"하는 부엉이의 울 음소리 가 처량하게 울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절망과 공포에 사색이 되 었다. 그러나 단 한 번 울고 난 부엉이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모두들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마 을 사 람들은 두려움에 떨려 느티나무에 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튿날 나이 밝자 마자 사 람들은 모두 느티나무에 모여들어다. 나무밑에는 뜻밖에도 커다란 부엉이 한 마리가 떨어져 죽어 있었다. 그해에 사람들은 어떤 병도 앓지 않았다. 오히려 그 외의 재난에도 마을이 지켜지게 되었 다. 그 로부터 해마다 제관을 뽑아 정월 열나흘날 밤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후산이 지어준 축문을 낭독하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지금도 원호동 사람들은 해마다 그 느티나무에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그 느티나무를 성황당 나무 또는 마을을 지켜준다는 뜻에서 "골매기나무"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