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귀정의 유래-민요/구비문학/민속놀이 - 문화유산 - 안동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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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학문과 예의를 숭상했던 유교문화의 맥! 민속문화의 보고!!

민요/구비문학/민속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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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귀정의 유래

상세설명

마을 동장과 함깨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삼귀정으로 찾아갔다. 정자 안에는 할아버지들이 여덟 분 모여 있었다.
오전 10시경 이 되었는데, 낮잠을 즐기느 분도 있었고 모여 이야기를 하느 분도 있었다. 마을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동제 와 풋굿에 관한 내용이 특이하여 녹음 하였다. 이들 내용은 마을 개관에서 밝혀 두었다. 마을 조사를 마치고, 먼저 조사장소 이기에 한 ′삼귀정′에 관한 이야기를 물었더니 제보자가 나서서 이 이야기를 했다.
삼귀정은 이 마을의 동쪽 입구에 외따로 덩 그렇게 자리를 잡고 있어 마을의 풍치를 더해 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모으는 정자이다. 주위에는 오래된 느티나무나 조송들이 잇어 여름에는 피서지 폄 겨로당으로 이용되기도 하는 곳이다.
아까 그 인제, 저 그 머루 다래 친다고 그러는 그 연유가 되는 문젠데. 애- 우리 안동 김가가 시조가 인제 맹 김태산데, 김태 사!

[조사자:예.]그 뒤에 내려 오다설람 판관공이라는 게 있어요. 인제 그판관공. 쭉 내려 오다가, 판결한 판자하고, 벼슬관 짜, 판관 공, 판관공이. 그럼 9세 될 거요. [받어쓰라는 듯이] 9세, 9세, 9세.

[저사자 : 에, 말씀하시소] 판관공 당시에, 그 판관공 부인 되는 분이 말이요, 예천 권끼, [다시 받아쓰라는 듯이 공백 을 둠]

[조사자 :예 ,말쓰하시소. 계속하기고. 안 적어도 되니더.] 예천 권씨라는 그 어른이, 안어른이 계겪는데, 팔십 여덟살에 돌 아 가셨어요. 팔십 여덜 살에 팔십 여덜 살에 돌아가겼는데, 그 중년에 참, 판관공이 돌아가시거, [사진을 찍으려니 손을 내저으 면서 찍지 말라고 한다.] 중년에 판관공이 돌아가시고, 그럼 인 제, 안어른이 헌자 계시는 것 아니여?
[조사자 :예 ] 안어른이 혼자 계시는데. 그 아들이 오 형제 분이랐어요. 오 형제분. 아들 이 오형제분. 오형제분인데, 맏분은 배울학자, 할애비조자, 학조 대사. 이분은 결국 이제 중으로 가셔가지고 불교를 믿게 외여가 주고, 출가를 하셨부랬는데.나중에 그 저 세조 당시에 국사 나라 국자 스스 사자 불가로서는 제일 높은 벼글이랬그던,

[조사자 : 예]세조 당시에 국사로도 아주 유명한 분이고, 맏분이 말이요 으이?

[조사자 :예 ]응, 이 학 자 , 조 자, 학조대사...

[조사자 : 예, 계속하시소.] 들째줌이 인제 감찰공, 또 세째분이 지사공, 또 네제분이 수원공, 다섯째분이 장령공. 인제 그 옛날 모도 인제 공자 달었으이. 형제부이 계셨는데, 안 어른이 예천 권시 되는 어른이 거 인제, [빠르게] 여 [마을을 가리키며] 안에 게시다설 라마 여름 철쯤 됐을께요. 여게 인제 시원하다고 여기 늘 나와 인제 계시고 하니까, [본래대로] 그 맏분은 중을 가셨다고, 그 자제 사 형제 분들이 그 안어른 뎨천 권씨를 위해가지고ㅡ 말할 것 같으면 [빠르게] 그 부모를 섬시시 위해가지고 여기다 첫번 에, [본래 소리로] 그-저-, 느옥이라꼴랑, 그 저 머 띠라 그르잖 아. 띠?

[조사자 : 예]찌 말이래. 띠 어이? 저 산에 가만 거 띠라 그는 거 말이오

[조사자 : 예 속새글은 거] 그 속새 글은거, 그걸 가지고 머 원드막 비슷한 게 지었던 모야이요. 그래 지어 놓았 다. 이제 차차 차차 그걸 개조 하고, 해가주고 요기 어데 있을 때, 연산군 2년에 이거 맨들었을께라 이게, 연산군 2년에. 돤전 히 이래 된것이. 연산군 2년 당시에 그 인제 사형제분들이 이 래 만들었는데. 그 이것 인제 모든 정자와 조금 다른 것이, 다른 정자로 볼 것 같으면 관광을 위주로 해서 짓고, 또 안 그럴 것 같으면, 어느 분을 저명현 자기의 행적을 드러내기 위해 짓는 것인데, 이것은 순수하게 그 인제 부모를 위해가지고 효도를 하지 귀해 지은 정자요, 이것이. 그래가주 인제 교욱 자료도 이 거 상단히 인제 쓰이기 돼가주고, 왕년에 저기 머 교육청 주체 로서 중고등학교 교직자, 혹은 국민학교 교직자들도 여기 와설 랑 인제 그머, 돌아본 일도 있거 한데.

[빠르게] 거기 좀 연유 가 좀 다른 거지요. 이것은 정자가 그양 볼 때는 동구 앞에 있 으ㅖ, 인제 관광을 위한 정자 같지만 말이여. [본래대로] 사실을 으리네들이 여기 여름철에 피서도 하고, 이래 머 관관의, 요새 머 관광의 가치는 잦추지 못했지만 [말을 바꾸어서 ] 가지고 있지마는 근본 문제는 이것은 효를 위해 가지고, 지은 정자요, 요건 좀 다른 거요. 요것이. 그래 인제 아까 [옆 사람을 턱으로 가리키며] 이 분이 말했다시피 인제 돌이 세날이 있는데, 거북 형상이라 캐서 인제, 그래 인제 삼귀정이라 그래 이름을 지어 놓은 겐데. 고것이 [정자 나의 현판을 가리키며] 인제, 고 인제 여기 가면 다 요 있는데 요게. 이거 떼어 보만 전부 다 나올께 요. 여기에 삼귀정이 인제 여떻게 되어서 인제 감찰공, 부사공, 장령공, 요는 세 분만 쓰있어요. 그 형제 분 중에 맏분은 중 가 셨부리고, 제 분이 남아 있는 게, 그래 세 분만 쓰있단 말이요. 한 분은 일찌기 돌아가셨을른지는 모르겠는데,

[청눙:돌아갔어] 그래 이제 세분이 그 안어른을 위해가주고 짓다꼬, 이렇게 해 놨는데. 이런 유래가 쓰여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