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봉 김성일 종손가 소장 전적-전적/유물 - 문화유산 - 안동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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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유물

학봉 김성일 종손가 소장 전적

주소
서후면 풍산태사로 2830-6 (금계리 856)
상세설명
  • 분 류 : 문서
  • 지 정 : 보물 905호(1987. 6. 30)
  • 시 대 : 조선시대
  • 소재지 :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856

이 전적(典籍)은 조선의 문신·학자인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 1538∼1593)의 종손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다. 김성일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峰)으로 일찍이 이황(李滉)의 문하에 나아가 학문을 닦았다.
1564년(명종 19)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고, 1568년(선조 1) 증광시(增廣試)에서 병과(丙科) 23人으로 급제하여 예문관(藝文館) 검열(檢閱)로서 사관(史官)을 겸하였다.
이어서 이·병조(吏·兵曹)의 낭관(郎官)을 역임하고 1576년(선조 9)에 독서당(讀書堂)에 들어가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고 다음해에 명에 다녀왔다. 이어 대간·홍문관(臺諫·弘文館) 등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치고 부제학(副提學)에 이르렀다.
1590년(선조 23) 통신부사(通信副使)로 일본에 파견되어 적정을 살피고 다음해에 돌아 왔다. 이 때 민심의 동요를 안정시키기 위해 적의 침입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제시하였는데, 다음해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초유사(招諭使)가 되어 경상도 지역에 파견되어 의병을 궐기를 촉구하기도 하였고, 이어서 경상감사(慶尙監司)로서 임란의 타개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다가 晋州에서 병을 얻어 순직하였다.
후일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되고 ′문충(文忠)′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며, 안동의 호계서원(虎溪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저서로는 "해원사록(海援 錄)"·"북정록(北征錄)"·"학봉집(鶴峯集)"등이 있다.
이 전적은 56種 261冊으로 먼저 간본(刊本)은 1418년(태종 18) 계미자(癸未字)의 복각자(覆刻字)로 간행된 "예기천견록(禮記淺見錄)" 2책, 1425년(세종 7)에 인쇄된 경자자판(庚子字版)의 "사기(史記)" 14책을 비롯하여 김성일이 국가로부터 하사받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등의 내사본(內賜本) 등이 있다.
이들은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것들로서 28종 156책에 달한다.
그리고 필사본은 김성일의 자필초고본(自筆草稿本)인 "호당삭제(湖堂朔製)"·"퇴계사전초(退溪史傳草)"·"해원사록(海援錄)"·"조천록(朝天錄)"·"북정록(北征錄)"등을 비롯하여 각종 서간(書簡)을 첩(帖)으로 만든 "선현유묵(先賢遺墨)"·"용사사적(龍蛇事蹟)"등 28종 85책이다. 이들은 매우 방대하고 우수한 것들이며, 그 중에는 희귀본이 상당히 많아 역사적으로나 서지학적으로 크게 주목되고 있다.
곧 이들을 통해 조선 전기의 여러 가지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이들의 간행에 사용된 활자가 계미자복각(癸未字覆刻)·경자자(庚子字)·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갑인자복각(甲寅字覆刻)·재주갑인자(再鑄甲寅字)·을해자(乙亥字), 그리고 각종 목판본 등이 있어 당시의 인쇄술 연구에 크게 도움을 주는 동시에 이들을 통해 다른 전적들의 간행 연대도 파악할 수 있다.
또 필사본의 경우 김성일의 자필초고본(自筆草稿本)이 11종에 달하는데, 이들의 대부분이 김성일이 사환(仕宦)중에 겪은 일들을 기록한 것으로 당시 사회의 정치·외교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운장각

유물전시관인 운장각 내에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