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렬서원
창열서원은 사육신 중 한 사람인 단계 하위지 선생의 학문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 하였다. 1804(순조 4)년에 창열사를 지어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였고, 1809년(순조 9)에 안동 시 서후면 송야리에 창건하였다. 그 뒤 사림의 중의로 안동시 서후면 이개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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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렬서원
창열서원은 사육신 중 한 사람인 단계 하위지 선생의 학문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 하였다. 1804(순조 4)년에 창열사를 지어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였고, 1809년(순조 9)에 안동 시 서후면 송야리에 창건하였다. 그 뒤 사림의 중의로 안동시 서후면 이개리로...
예안이씨
학가산에서 떨어진 한 갈래 지맥이 30여리를 남으로 뻗어 풍산읍 동쪽을 에워두른 하지산(下枝山),와우산(臥牛山) 기슭에 기대어 서남으로 활짝 열린 풍산평야를 앞에 깔고 남북으로 길다랗게 자리잡은 서남향 마을이 예안이씨 문중이 400여년을 세거해 온 풍산 우렁골 곧 풍산...
예천임씨
이곳 예천 임씨가 임하 금소에 터전을 열어 정착하기는 야은 임억숙에 의해서라고 하니, 중종 무렵쯤일 듯 짐작된다. 본래는 명족으로 일컫던 가문으로, 고려 중기에 시문의 대가로, 이인로등과 함께 강좌칠현의 한 사람으로 크게 울렸던 서하 임춘을 시조로 하는 이 곳 금소...
우계이씨
고려의 알려진 가문이었던 우계(羽溪) 李씨는 조선초에 도평의사사(都評議司事)를 지낸 의( )가 개국공신(開國功臣)으로 원종훈(原從勳) 일(一)등에 책록(冊錄)되고, 그 아들 인숙(仁淑)이 덕천군수(德川郡守)를 지냈으며, 인숙의 아들 경창(景昌)이 주부(主簿)를 지내고,...
원주변씨
원주 변씨가 안동에 입향하기는 연산군때 변희예가, 무오사화로 세상이 몹시 불안하매, 사헌부집 의로 있던 그 아우 희리와 함께 낙향함으로였는데, 본래 지체있는 가문으로, 고려 공민왕때 홍건 적의 난리를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2등공신에, 뒤에 경도를 수복하고 1등공신에 ...
타양서원
영조17년(1741) 정평공(靖平公) 손홍량(孫洪亮),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 파산(巴山) 류중엄(柳仲淹) 선생을 제향하기 위해 설립된 서원이다. 대원군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일직 송리 뒷산에 단(壇)을 쌓아 제향해 오다가 1984년 사림에 의해 복설되어 매...
의성김씨
길 없어, 마을 이름까지를 방적동(邦適洞)이라 했다니, 곧 「나라가 바뀌었으니(邦之革矣), 나는 어디로 갈것인가(我安適歸)의 뜻으로였다고 하는데, 그 방적동이란 지금의 안동시대 율세동(栗世洞)으로, 속칭「밤적골」은 방적동에서 음전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천( )의 증손...
일직손씨
일직 손씨는 안동 손씨라고도 하는데, 그 시조는 고려 현종때 중국 송에서 귀화한 순응으로, 현 종임금의 이름이 순이어서, 음이 같음을 피하여 손으로 사정되었다고 하며, 고려의 장군인 그 후 손 간을 중시조로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직에 입향한 유래는 상고할 길이 없으며...
재령이씨
영해의 재령이씨는 한때 7 징사(徵士)를 배출하는 등 학행높은 선비를 많이 배출한 영남에서 알려진 문벌이다. 재령군(載寧君) 이우칭(李禹 )을 시조로 하여 영해에 정착하기는 중종때 현감을 지낸 함(涵)으로부터 비롯되는데 영해 나라골의 재령이씨가 일약 영남의 명문으로 올...
전의이씨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왕조가 시작되면서 세상이 자못 뒤숭숭하고 어지러울 때 고려 태사(太師) 도(棹)의 후손으로 고려 조정에서 전농정(典農正)을 지낸 이웅(李雄)이 단연 벼슬을 버리고 사재감정(司宰監正)을 지낸 숙부 사경(思敬)과 함께 영남으로 내려와 숙부는 개령(開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