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재
예천 임씨 금소 입향조 야은공의 7대손인 임만영(林萬榮)의 묘제를 받들고 묘소를 수호하기 위한 재사다. 추모재 기문은 증손인 임병진(林秉鎭)이 지었다. 집 구조는 ‘ㄷ′자형 목조와가다. 동쪽이 성경재(誠敬齋), 서쪽이 필분재(苾芬齋)다. 임씨문중 목조와가 조선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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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재
예천 임씨 금소 입향조 야은공의 7대손인 임만영(林萬榮)의 묘제를 받들고 묘소를 수호하기 위한 재사다. 추모재 기문은 증손인 임병진(林秉鎭)이 지었다. 집 구조는 ‘ㄷ′자형 목조와가다. 동쪽이 성경재(誠敬齋), 서쪽이 필분재(苾芬齋)다. 임씨문중 목조와가 조선후기...
칠곡댁
이 집은 퇴계(退溪) 선생 9세손이며 사은(仕隱) 이귀운(李龜雲)의 손자인 이휘면(1807~1858)의 고택이다. 현재 이집 주손은 이장환씨이다. 이 장 환 목조와가 조선후기 이휘면(1807-1858)
일송김동삼생가
항일지사 일송 김동삼 선생이 1878년 6월 23일에 한학자 김계락공과 영해 신씨 사이에 태어난 집이다. 이 집의 원래구조는 6칸 겹집으로 서편 앞쪽에 사랑과 뒤쪽에 사랑윗방, 중간에 남북으로 대청마루, 동편 앞쪽에 주방과 뒤쪽에 안방이 각각 자리잡았다. 그러나 198...
유울재
울진임씨 시조 충경공(忠敬公) 임우(林祐)의 16세손인 임강(林江)이 360여년전 금소리로 입향했다. 공을 기리기 위해 1928년에 후손들이 힘을 모아 건립한 재사다. 회서당(會叙堂)이 4칸, 양로실(養老室)이 1칸, 육영실(育英室)이 1칸으로 이뤄져 있다. 13세 주...
산고재사
진주 강씨 옹천 입향조 강두전(姜斗全)의 손자인 오선(五璿)과 그 이하 여러 위의 묘제를 받들기 위한 재사다. 소우(小愚) 강벽원(姜壁元)이 ‘산고재사’ 현관 글씨를 썼다. 추원재(追遠齋)와 화수당(花樹堂)이 정면에 걸려 있다. 재사가 비어 있어 황량한감이 있다. 그...
영모정 및 재사
이곳은 영모정(永慕亭) 임중국(林重國)의정자와, 만문 임만휘의 증조부인 재원(載遠), 조부인 영모정 중국, 만문의 선고 증 가선대부 한성부 좌윤 도총부 부총관 흥대(興大) 등 삼대의 묘제를 받들기 위한 재사다. 영모정은 가선대부 공조참의를 지낸 임중국을 위해 후손들이 ...
야암정사
의성인 야암 김임의 정자다. 자작한 「야암설(野菴說)」에 “내가 평생 하는 일은 실속 없는 겉치레를 버리는데 힘쓰고, 오직 속되고 야함만을 숭상했다. 집은 이 야인이 사는 곳이요 사람은 이 집의 주인이다”라고 한 바와 같이 처사적 삶을 살아가려고 뜻한 주인이 거처하던 ...
천산정사
안동 권씨 시조 31세손인 석촌(石村) 권석하(權錫夏)공의 정자다. 정자 정면에는 추월헌(秋月軒) 현판이 게판되어 있다. 현판은 동농(東農) 김가진(金嘉鎭)이 썼다. 권 재 호 목조와가 조선후기 권석하(權錫夏:헌종7, 1841-고종 광무7, 1903)
한사정
월천(月川) 조목(趙穆:1524~1606) 선생(先生)의 둘째 아들인 한사(寒沙) 조석붕(趙錫朋)공의 후손들이 공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정자다. 「한사정기」는 1978년에 퇴계 선생의 16대손인 이동은(李東恩)과 전주(全州) 이진재(李震宰), 한양(漢陽) 조광영(趙光...
선유정
이 정자는 청계 김진 선생이 건물을 지어서 셋째 아들 운암 김명일공에게 내려준 곳이다. 원래의 위치는 임하현 동쪽인 길안면 용계리 도연(陶淵) 선암(仙庵) 앞에 있었으나 해방 이후 6·25 사변 이전 혼란기에 400여 년이나 유지해온 고적이 불에 타 없어지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