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 류 : 사묘, 제단
지 정 : 경상북도기념물 15호
지정일 : 1974. 12. 10
소재지 : 안동시 북문동 24-1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 : 태사묘 관리 위원회
규 모 : 4,035㎡
이 건물은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삼태사 김선평, 권행, 장정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재사이다. 「태사묘사실기년(太師廟事實紀年)」에 의하면 983년(고여 성종 2)에 처음으로 삼공신의 제사를 안동부사(安東府司)에서 거행하였다 한다.
1481년(성종 2)에 관찰사 김자행이 묘우를 세우는 터전을 마련했고 이어서 1540년(中宗 35) 안동부사 김광철(金光轍)이 현 위치에 묘를 건립하였으며, 1613년(광해군 5)에는 규모를 확대 개건하고 그 이름을 비로소 태사묘(太師廟)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그 후에도 혹은 증축하고 수리하며 제도를 보완하여 왔으나 6·25동란 중에 전면 소실된 것을 1952년 재건에 착수, 1958년 9월에 완공되어 현재는 보물각과 숭보당, 동서재, 경모루, 안묘, 차전각 등이 있다. 묘정에는 삼공신비가 세워져 있다. 보물각내에는 3공신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정면5칸, 측면2칸, 팔작지붕와가로 자연석 기단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그 위에 각주를 세웠다.
우물마루 상부는 5량가로 비교적 건실한 수법을 사용했고 주두에 대들보 놓고 동자기둥을 세웠고 동자주두에 걸친 종보위 마루대에 포대공 끼워 장식하고 있다.
대청(정면3칸,측면2칸)을 중심으로 해서 좌우에 통칸온돌방이 드리워져 있다. 장방형의 ′ㄷ′자형 집이다.
몸채는 1987년 보수 때 발견된 1736년(영조 12)의 상량문에 의하면 본래 능료사의 한 전각이었는데, 풍산류씨의 재사로 인수하여 1558년(명종 13)에 중수하고 1622년(광해군 14)에 보수하였다고 한다. 앙서로 된 이익공식이고 후면에서는 초익공식인데 그 양식이 고격을 지니고 있어 주목된다.
고려 태조의 공신인 김선평, 권행, 장길 세분을 일컬어 삼태사라고 한다. 삼태사는 안동 사람으로서 신라 말엽 후백제의 견훤이 경애왕을 죽이자 반드시 왕의 원수를 갚기를 맹세하고 때를 기다렸다. 930년 (태조 13년) 마침 태조가 이곳에서 견훤과 싸우게 되었는데 삼태사는 태조를 도와 견훤의 군대를 물리치는데 큰 공헌을 세웠다. 이에 태조는 삼태사의 공을 높이 치하하여 원래 경주 김씨인 그들에서 선평은 김, 행은 권, 길은 장의 성과 태사의 벼슬을 내리고 공신으로 봉하였다. 그리고 고창군이었던 이 고장을 안동부로 승격시켜 삼태사의 식읍로 삼게 하였다. 현재 삼태사의 사당인 태사묘는 안동시 북문동에 있고 무덤은 안동군 서후면에 있다.
삼태사가 견훤의 군대를 격파하고 승전의 잔치에서 비롯된 남성들의 대동놀이인 차천놀이가 태사묘 안 차전각에서 전승·보전되고 있다.
기차역에서 시청방향으로 도보로 10분거리(구시청 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