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안동의 인물 - 문화유산 - 안동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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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인물

안동의 인물

이육사

분류 :
문화 > 인물
상세설명

자원설명

청 포 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마을 전설이 주절이 주절이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두렴.
이 시는 1939년 「문장」지 8월호에 이육사가 발표한 시다. 향토적이고 선비성이 풍부하고, 청아하며 한국적이다.
이 시가 갖는 상징성을 살펴볼 때 「내 고장 칠월」은 조선의 현상이다. 「이 마을 전설」은 나라의 역사다.
이 역사가 청포도처럼 주절주절 열리어 익어 가고 있다. 역사는 성숙해 가는 것이다.
「하늘」은 이 나라의 희망이다. 이 역사 속에 희망이 들어와 박혀 역사는 성숙해 가는 것이다.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는 암담한 현실이 밝아지는 것을 뜻한다.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 오면」은 평화다.
이 평화와 함께 「내가 바라는 손님」이 온다. 이 손님은 이상세계다. 바꾸어 말하면 조국 광복이다.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은 행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식탁에 「하얀 모시 수건」을 「은쟁반」에 담아 준비하는 것은 소박한 한국의 서정이다.
청포도는 다른 많은 애국시처럼 감상과 애상에 젖지 않고 밝고 맑으며 희망적이다. 이것은 육사(陸史) 자신이 시인인 동시에 열렬한 독립투사였던 데서 오는 필연적 결과라 하겠다.

공(公)은 본명은 원록(源綠), 호는 육사(陸史) 이다. 1904년(광무 8) 경북 안동(安東) 도산(陶山)에서 태어났다. 보문의숙(普文義塾)과 대구 교남(嶠南)학교에서 수학, 중국 북경 사관학교에 적을 둔 적도 있다. 중국 북경대학(北京大學) 사회과를 졸업하여 잡지를 발간하고 신문기자로도 있었으며 사회운동에 참여한 뒤에 소설을 쓰다가 30세가 지난 후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37년 서울에서 신석초(申石艸), 윤곤강(允崑崗), 김광균(金光均) 등과 시 동인지 자오선(子午線)을 발간하여 서정이 풍부한 목가풍(牧歌風)의 시 「청포도(靑葡萄)」,「교목(喬木)」등을 발표 상징주의 적이면서도 호사한 시풍(詩風)으로 일본 제국주의하에서의 민족의 비극을 노래하며 정치적 울분을 터뜨렸다.
한때 신조선사(新朝鮮史)·인문사(人文史)에 근무, 1941년 폐가 나빠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했고 이듬해 북경으로 갔다가 여름에 귀국, 민족운동과 관련된 혐의로 일본영사관 형사에게 체포되어 투옥, 1944년 북경 감옥에서 옥사했다. 해방 후 친구들의 호의로 발간된 육사시집(陸史詩集)에 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1968년 이육사 선생의 고귀한 정신을 후대에 기리기 위하여 안동시내 낙동강 언덕에 기념 시비를 세웠다가 안동댐으로 이건하였다.

<참고문헌>韓國大事典, 永遠한 韓國의 名詩解說 京元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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